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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Dec 11. 2024

두 번째 한 달 살기를 꿈꾸다

여기 어때


계획대로라면 겨울방학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내 모든 계획이 타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던 바, 이번엔 자의에 의해 계획을 변경하고 싶었다. 나도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이니까.


말레이시아가 준 여운은 꽤 오래갔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고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지만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집에 있는 나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쌓여 시간을 보냈다. 예전 같으면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이 시간, 집안에 흐르는 적막이 무척 반가웠을 텐데 어딘가 허전하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랫줄에 널어 논 빨래를 걷어 개고 새 빨래를 다시 널었는데 더는 할 일이 없다. 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봄 이불 덮기에 아직 춥다. 부지런을 떨려해도 딱히 할 일은 없다. 아이들이 오려면 아직 한참인 데 갈 곳도 없다. 오도카니 앉아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음악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추억’이란 동영상이 행복했던 그 시절을 대변하는 듯, 마치 아득히 오래 전의 일인 듯, 그때의 우리가 지금은 아닌 듯 무심히 재생된다.


말레이시아에 다녀온 후 고등학교 단짝 지혜를 만났었다. 우리 딸아이와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지혜는 워킹맘이라 한 달 살기는 해보고 싶지만 당장은 시간이 없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겁이 나기도 하고 아이랑 단둘이 한 달 동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내 한 달 살기를 궁금해했다.

 “지혜야, 너나 나나 중고등 6년 책으로 배운 영어, 실력 고만고만하잖아. 우리가 뭐 영어 연수를 다녀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외국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에 큰 불편함은 없더라. 내가 거기서 뭐 국제정세에 대해 토론할 것도 아니고 식당 가서 음식 주문하고 급할 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되는 정도니까. 워낙 친절한 사람들이라 설령 네가 못 알아들었어도 어떻게든 잘 안내해 줄 거야. 아, 근데 나보다 영어 더 못하는 중국인을 투어 보트에서 만난 적 있다. 중국인들만 탄 보트에 한국인은 우리만 탄 거였는데 다들 우리가 궁금했겠지. 영어로 떠듬떠듬 물어보는데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중국어가 튀어나오더라. 진짜 10년 만에 나 중국어 했나 봐. 중국인들은 외국인이 어설프게 자기네 나라 몇 마디 하면 그다음부터는 막 프리토킹으로 자기 할 말 하거든. 내 수준 고려 안 하고. 반은 듣고 반은 흘려보내며 어쨌든 그래도 서로 궁금한 거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주고 투어 끝날 때까지 심심하지 않게 보낸 적도 있다. 애들은 내가 중국어 하는 거 처음 들으니까 영어나 중국어처럼 외국어를 하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어렴풋이 느낀 것 같아. 아 그리고 내가 운전을 못하니까 한국에선 기동성 있는 엄마가 못되어주잖아. 근데 내가 또 길치는 아니고 지도도 잘 보는 편이라, 어차피 뚜벅이인 보통의 해외여행에선 이게 장점이 되더라. 한국에선 쓸모없었던 내 개똥 같은 능력이 해외에선 약으로 쓰인단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혜야, 나 다시 또 가고 싶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전업주부 10년 차에 처음으로 잉여인간 느낌이 들지 않아서, 나 꽤 쓸모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람난 유부녀처럼 외도의 짜릿함을 끊어내지 못하고 또 다시 검색에 들어갔다.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추천 장소. 치앙마이, 발리, 세부, 쿠알라룸푸르, 시드니… 지금도 그때도 여전히 난 발리에 가고 싶지만 남편은 탐탁잖아 한다. 남편이 생각하는 발리는 추측건대 청춘, 환락, 유흥의 장소인 듯하다. (칫, 가본 적도 없으면서…) 아, 세부. 필리핀은 총기소지 국가니 물어보나 마나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흥, 그럼 세부 간 한국인들은 다 총맞나)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온 후 변화된 아이들을 보면서 남편은 한 달 살기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인정하고 싶진 않았겠지만 인정하는 단계까지는 왔다. 하지만 장소를 선택을 하는 데는 치안이 일 순위다. 그래서 한 달 살기의 성지라 불리는 치앙마이를 밀기로 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 예술가의 도시, 태국 제2의 도시, 아이랑 가기 좋은 여행지… 치앙마이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남편의 검열에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한 달 살기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곳이 치앙마이가 아닌가.


사실 두 번째 한 달 살기를 이렇게 빨리 겁 없이 계획하는 데에는 금전적인 이유가 배후에 깔려있었다. 한 달 살기를 생각하면 보통 최소 천 단위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남아 4박 5일 여행에도 인당 보통 100~200만 원의 예산을 잡는데 3인에 30일이면 천만 원은 족히 넘을 거란 생각이 일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니 우리의 한 달 살기 비용은 나의 예상을 훨씬 밑돌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경우다. 천만 원으론 어림도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동남아 한 곳에 한 번 더 갈 돈이 남은 거다. 게다가 쿠알라룸푸르보다 물가가 더 저렴하다는 치앙마이라면 충분한 금액이다. 내가 알뜰해서 내가 또 가겠다는데 남편이 막을 재간이 없겠지.


그날 저녁 퇴근하고 온 남편과 마주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난 2차 한 달 살기 계획안을 자못 진지한 어조로 브리핑했다. 한창 바쁠 여름, 남편을 쏙 빼놓고 우리만 가게 됨을 미안해하면서 대신 원래 다음 한 달 살기로 따로 모으고 있던 돈은 겨울에,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으로 네 식구 함께 다녀오자고 네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편은 일단 알았으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치앙마이 숙소 검색을 하고 마음에 드는 집 서너 군데를 위시리스트에 담아두고 잠을 청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일상보다는 설령 그 기대가 무너지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여정을 꿈꾸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지만 기다림을 품고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너무도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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