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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27. 2022

완벽함에 금이 가고 깨지기 시작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변수




 일본에서 돌아온 나는 한 학기 휴학 후 2016년 3월 복학했다. 복학 후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졸업을 위해 남은 학점을 채우며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소소한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4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집에서 취업을 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고로 일을 해야 한다는 엄마의 강력한 주장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전공을 살리지 않고 일반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분명 내 전공으로 취업을 할 수 있는 분야는 제한적이고 일자리가 많은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평범하게 사무실에 앉아 엑셀 표를 작성하고 거래처 전화를 받는 평범한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취업 압박을 무시하고 있었다.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고 자취방을 정리한 뒤 수도권에 있는 본가에 들어오자 엄마는 교회의 아는 사람이 하는 회사가 있다며 그 곳에 면접을 보러 가라고 밀어넣었다. 나는 면접을 망쳐서 불합격을 받을 생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면접을 망쳤다. 부사장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면접을 망쳤으니 불합격이겠다,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면접 후 갑자기 지필 테스트를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렇다면 지필 테스트도 망쳐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문제를 연필 굴리기로 찍고 제출했다. 이번에는 불합격을 주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온 연락은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였다.


 그 곳에서 겪은 것은 소위 말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출근해서 인사를 하면 무시하고 인사를 안 하면 자신을 무시했다며 화를 냈다. 신입이라 전화응대가 미숙하니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해서 안 받았다고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나름 무탈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에 감당할 수 없는 큰 파도가 들이닥친 기분이었다.


 어마어마한 파도에 휩쓸려 오랜 기간 허우적대던 나는 그 곳에서 병을 얻었다. 공황장애였다. 버스와 전철을 타는 것이 힘들어지고 사무실에 앉아있기만 해도 너무나 불안했다. 그러다가 평소 나를 괴롭히던 평사원이 소리를 지르자 숨이 안 쉬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회사 로비에 있었다. 쓰러진 것은 사무실 내에서였는데 어떻게 누가 나를 로비에 옮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황장애가 있는 것은 신입사원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과장님의 말을 들었다. 병원에 가지 말고 신앙으로 치유하라는 말은 덤으로 따라왔다. 어이없는 말에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부장님과 싸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 길로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심하다는 의사의 말에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그런 내가 탐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계속해서 정신과를 다니는 것은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말을 넌지시 던졌다. 그런 곳에서 내가 건강을 갉아먹히며 일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장 돈 150만원이 급하다고 그 곳에서 몸과 정신을 망가트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졌다. 결국 나는 5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에 당일 퇴사를 통보했다. 더는 몸도 정신도 버틸 수 없었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나마 있던 건강은 다 잃고 망가지고, 나는 그저 황망하고 불쾌하고 화와 좌절만 남았다. 그것들이 너무 커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니 정신건강은 더욱 빠르게 망가졌다. 그 때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 무슨 정신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목을 줄로 세게 조르고 있었다. 놀라서 외래를 보던 정신과에 가서 말하니 의사는 대학병원을 가라며 진료의뢰서를 쥐어주었다. 지긋지긋하고 지겨운 병원살이가 시작되었다.


 병동에서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불안을 혼자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 무언가가 필요했다. 매서운 파도 속에서 흔들리는 내가 확실하게 붙잡을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처음의 그 무언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온갖가지 파트타임 일을 전전했다. 애견카페, 공장, 꽃집, 아동 미술학원까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뭔가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애견미용, 제과제빵, 플라워까지 학원을 다니며 배웠지만 안정적인 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도 호전되었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해 몇 번 입퇴원을 거쳐야했다.


 답답한 벽에 부딪혀 그 주변을 맴도는 기분이 반복되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 때 떠오른 것이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물고기다. 어린 내가 진로는 물론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까지 생각하게 한 물고기. 내 자신이 너무 힘들고 아프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때의 생각과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물고기를 생각하니 잊고 있었던 초심이 떠오르고 조금이기는 하지만 열정이 생겨났다.


 사람은 누구나 종종 평온하고 한 번은 아프고 가끔 좌절하고 자주 불안하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을 살아가며 파도에 휩쓸릴 수도 있고,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그에 너무 낙심하지 말고 초심을 지키며 살아가면 된다. 그거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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