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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26. 2022

일본으로 떠난 특별청강연수

교환학생이 남긴 경험




 2014년 가을 나는 대책없이 일본으로 특별청강연수, 쉽게 말해 교환학생을 떠났다. 교환학생 지원을 할 즈음 나는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었고 그 시기는 정말 바빴다. 전공과목으로 가득 찬 시간표에 실험과 실습이 매 주 있었다. 그러다보니 강의가 끝나고 자취집에 가면 실험보고서를 쓰고 그 날 강의를 정리하고 공부하는게 매일 일상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일주일이 흘러가기는 하는지 알 수 없는 바쁜 일과가 반복되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고 나니 조금씩 내가 지치고 있음을 느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보니 그렇게 좋아하는 아쿠아리움은 고사하고 바다를 보러 갈 잠깐의 시간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충전을 시켜도 금방 배터리가 떨어지는 낡은 전자기기가 된 기분이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영원히 내가 방전될 것만 같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의 환경에서 큰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길이 일본으로 교환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내 결정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학과사무실에 교환학생 신청서류와 교수님 추천서를 제출한 날 엄마는 나에게 전화로 지금 꼭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겠냐는 말을 하셨다. 지금 일본은 한혐감정도 심하고 차별을 당할 수 있으니 교환학생을 가지 말고 한국에 계속 있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 뜻 역시 완강했다. 나는 끝끝내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우겼고, 결국은 내가 이겼다. 이후 학생비자 발급과 일본 국민건강보험 가입, 일본 대학교 장학금 신청, 기숙사 신청, 수강신청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내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2학기가 시작하기 며칠 전이었다. 일본 대학교는 10월과 4월에 학기가 시작하기 떄문에 9월 말에 현지에 들어갔고, 그 곳에 가자마자 나는 가까운 지역에 있는 아쿠아리움의 1년치 회원권과 관상어에 관련된 일본어 서적을 몇 권 구매한 뒤 물고기와 관련된 강의를 수강신청했다. 그리고 익숙치 않은 일본어를 더듬더듬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알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서 이방인이었다. 청해는 익숙하지만 대화는 더듬더듬, 읽고 쓸 줄 아는 한자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한국에서도 이름을 한자로 쓸 줄 몰라서 신분증을 꺼내놓고 확인해가면서 그리듯 썼으니 말 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교수님이 나를 배려해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중국인인데 왜 한자를 쓸 줄 모르냐는 말부터 시작해 아예 나에게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교수님도 계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어류발생학 강의를 들어갔는데 교수님의 말은 하나도 모르겠고 프린트에 적힌 일본어는 더더욱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괜히 울고싶어졌다. 한국에서는 나름 전공공부를 꽤 했는데 일본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공부 뿐만 아니라 김치는 왜 그렇게 그립던지... 엄마를 졸라서 EMS로 김치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김치는 먹고 싶고 밥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건 싫어서 아침에 먹던 식빵 조각에 김치를 함께 먹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일본에서 조금 더 배우면 더 성장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너무나 공부하고 싶었고 좋은 성적을 받아 귀국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밤을 새가며 공부했다. 아침은 학교 학생식당에서 해결하고 빈 강의실이던 어디던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강의시간이 되면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또 공부를 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아쿠아리움도 보러다니고 자전거로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지만 평일에는 거의 공부만 했다. 마치 고3 시절을 다시 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나고 나는 어류신경학과 해양생물학에서 현지 학생들을 제치고 뛰어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물고기에 대해서 좀 더 알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기에 웃으며 회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배고프고 고생스러운 기간이었다. 보통 교환학생으로 가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공부한다고, 돈 아낀다고 회전스시집도 생일 날 딱 한 번 다녀왔다. 그 외에는 항상 우메보시(일본의 매실장아찌) 아니면 낫또와 미소된장국을 가득 끓여 함께 대충 밥을 먹으며 버텨야 했다.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만약 그 때로 돌아가 다시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일본 유학을 다시 갔을 것이다. 그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그리고 내가 사는 방식이 좋다. 인생을 다시 살 기회가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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