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Aug 26. 2022

전공으로서의 수산생명의학과

내가 겪은 수생의학도로서의 길





 나는 초등학생 시절 10마리의 물고기를 기르면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생각은 내가 물고기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만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남들은 모두 수능을 준비할 때 나는 자기소개서와 면접고사를 거쳐 모 국립대의 수산생명의학과에 입학했다. 면접고사 이후 최종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 내가 느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갈 곳이 물고기에 대해 공부하고 물고기를 살리고자 지식을 쌓는 곳이라는 사실에 감격스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현실은 내 이상과 달랐다. 동기들도, 선배들도 그 누구도 물고기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그저 수능 등급에, 내신 등급에 맞추어 왔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시무시한 동물 실험이었다. 어느정도 생명에 무뎌져야 버틸 수 있는 곳이었다. 의과대학이나 수의과대학처럼 실험동물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서 다양한 동물 실험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물고기를 살리는 지식을 배우기 위해 진학한 곳에서 물고기를 죽이면서 실험을 하고 있으려니 어마어마한 자괴감이 나를 덮쳤다.


 나는 물고기를 키우면서 아프거나 다친 물고기를 최대한 치료해주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1학년 첫 날부터 시작해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동물 실험은 늘어났다. 동물 실험과 실습은 나를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곤 했다.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멘탈이 견디기 어려운 날들이 쌓여갔다.


  물고기의 기생충을 본다고 해부를 해서 내장을 헤집거나 아가미 흡충을 관찰한다고 살아있는채로 아가미 조직을 잘라내기도 했고 채혈 연습을 한다고 작은 물고기의 미주정맥에 주사기를 몇 번이고 찔러넣었다. 물고기가 작으니 정맥은 매우 약하고 가늘었을텐데, 물고기는 미주정맥 아니면 심장에서 채혈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혈관이 터지던 망가지던 주변 조직이 너덜너덜해지던 주사기로 계속 찔렀던 기억이 난다. 채혈을 한 명에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여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상대로 채혈 연습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아무리 채혈을 잘한다 한들 물고기의 정맥과 주변 조직은 너덜너덜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부를 해서 뱃속을 난도질하는 것으로 실습이 끝난다. 고통은 작은 물고기가 견뎌야 할 몫이었다. 물고기가 좋아서 온 내 입장에서는 보기 고통스러운 실험과 실습의 연속이었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 입시의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정말 많은 입시생들이 수능과 내신 등급에 맞추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가 좋아서, 또는 잘해서 전공을 정한 뒤 그 길을 걸어오는 경우는 희귀한 케이스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그 누구도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물고기가 좋아서 수도권에서 300km 넘게 떨어진 지방으로 대학을 갔는데 스무 명 남짓한 신입생 중 물고기가 좋아서 수산생명의학과에 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다들 그저 성적과 등급에 맞추어 진학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의미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학교에서 나와 대화할 사람은 커녕 어울릴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점차 학과 내에서 고립되었다. 학과 사람들은 내가 특이한 애 또는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에게 학과는 물고기에 대해 배우면서 물고기에 대해 생각도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현재는 점차 물고기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진학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수산생명의학과를 진학한 것을 후회하는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내 전공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과 긍지가 있다. 물고기를 돌보고 물고기에 대한 것은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여러 사정으로 수산질병관리사 면허를 따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면허를 따서 정식으로 관상어를 치료해주는 관상어 전문 수산질병관리원을 개원할 생각이다.


 나에게 소중하고 자부심이 있는 전공인만큼 나는 수산생명의학과를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라기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수산질병관리사 면허를 일찍 따지 못한 것 정도 뿐이다. 개인적인 사정과 압박으로 졸업 전 전공과 관련없는 일을 해야 했고, 그러면서 내 건강이 망가져서 동기들이 취업할 즈음에는 회사가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계속 있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갈망이 지금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마트에서 500원을 주고 산 물고기던 전문 브리더에게서 100만원을 주고 데려온 물고기던 똑같은 물고기고 아프면 똑같은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오늘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좋은 관상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전공자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