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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29. 2022

제 물고기, 안락사 시켜줄 수 있어요?

월요일 아침부터 인류애가 바사삭




 "제 물고기를 안락사 시켜줄 수 있어요?"


 다소 자극적인 말에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슨 사정인지 알 수 없지만 키우던 물고기를 죽여달라는 말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자초지종은 들어보기로 했다.


 사연은 이랬다. 2년 남짓 기른 베타인데 어느 날부터 솔방울병 의심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솔방울병은 Aeromonas Hydrophila라는 세균에 의해 발병하는 질병으로, 체표에 비늘이 일어서고 복수가 차오르기도 하며 안구와 항문이 돌출되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만성이 되면 피부와 근육에 궤양이 생기고 입 속, 지느러미, 아가미뚜껑, 항문 등이 붉어지며 지느러미가 떨어져나가기도 한다.


 몸에 비늘이 일어서기 때문에 물고기가 다소 징그러운 모습이 되기도 한다. 징그러운 모습 뿐만 아니라 치사율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물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솔방울병은 죽음의 병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하지만 항생제 치료를 하면 치료 역시 충분히 가능한 질병이다. 요즘에는 관련 치료제도 시중에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인터넷 포털 쇼핑에 솔방울병 검색만 해도 다양한 치료제를 구매할 수 있다.


 물고기의 주인은 자신이 치료해줄 자신도 없고 치료해주려다가 죽으면 그게 더 슬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물고기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가자니 진료는 커녕 쫓겨날 것이 뻔하다고 했다. 솔방울병에 걸렸다는 물고기의 사진을 보니 비늘이 일어서고 복수가 차서 배가 빵빵했다. 전형적인 솔방울병 임상 증상이었다.


 간혹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 중 안락사를 고려한다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부레병과 같이 치료가 까다로운 질병에 걸리면 안락사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사랑해주면서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동물이 많이 아프면 종을 불문하고 이대로 고통 없이 안락사 시켜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주변에도 14년을 키운 반려견이 혈뇨를 보고 걷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자 결국 안락사를 시킨 적이 있다. 그 당시 견주가 울면서 전화가 와서 한참을 통화하며 위로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분명 치료가 가능한 질병임에도 치료를 해줄 수 없어서, 또는 관리가 귀찮거나 싫어서 안락사를 하겠다고 하면 나는 절대 반대다. 그래서 솔방울병으로 물고기를 안락사시키고 싶다는 사람에게 나는 의학적으로 분명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안락사를 도와줄 수 없으니 수산질병관리원에 문의해 치료를 받게 하라고 한 뒤 차단을 했다. 


 이전에 수의사 중 99%가 동물을 안락사 시킬 때 괴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의학을 배웠는데 동물을 죽이는 일 역시 수의사의 업무 중 하나라는 것에 괴로움과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아픈 물고기를 고쳐주고 잘 살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인데 sns 디엠으로 이런 문의나 받고 있으려니 그 자괴감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나 씁쓸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왠지 오늘 저녁에는 맥주 한 잔을 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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