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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Sep 08. 2022

보리 이야기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




 보리와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3월이었다.


 보리는 교회의 엄마 아는 분이 키우시는 개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였다. 그 집에서는 개를 마당에서 키우는데 중성화를 안 한 것인지 매 년 두 번씩 새끼를 낳곤 했다고 한다. 동네 개들이 짝짓기를 하고 도망치고 새끼를 낳는 일이 반복되자 견주는 담벼락 구멍을 막아보기도 하고 동네 개가 들어오면 쫓아내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보리의 아빠는 담 아래로 땅굴을 파고 들어와 짝짓기를 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보리였다. 





 처음 만난 보리는 작고 따뜻했다. 세상에 이렇게 작고 따뜻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니 졸린데 만졌다고 낑낑대며 자기주장을 했다. 이 하얀 솜뭉치가 뭐라고 그날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인지 모르겠다. 강아지가 제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나는 계속해서 아이가 생각났다. 그게 인연이라면 인연일 거다. 그래서 그 솜뭉치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5월 어느 날 꼬물이 솜뭉치는 보리가 되어 생수 박스를 타고 나에게 왔다. 그리고 그 일은 나를 그냥 사람에서 견주이자 강아지 보호자로 만들었다.


 2017년 봄에 만난 보리와 어느새 올해로 5년을 함께 살고 있다. 작고 귀엽던 솜뭉치는 싱거운 아저씨 개가 되었다. 여전히 내 눈에는 귀엽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리는 9킬로 남짓이 되는 개가 되어있었다. 그 사이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보리의 목소리가 커서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할 위기도 있었지만 반려견 행동 교정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위기를 넘겨 지금까지 보리는 나와 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듯 보리는 앞으로도 마지막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보리에게 있어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보리를 낳은 엄마 개와 보리와 함께 태어난 보리의 여동생이 죽었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면 엄마 개는 8살, 여동생은 6살이다.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라고 보기엔 나이가 적다.


 듣기로는 보리의 엄마 개는 보리 이후에도 새끼를 여러 번 낳았다고 한다. 1년에 두 번씩 몇 번을 더 낳았으니 일반 가정집에서 키우는 것 치고는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았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많이 새끼를 낳는데 무리가 없을 수가 없다. 


 여동생은 왜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미 개가 그렇게 새끼를 낳는데 중성화 수술도 안 시켰으니 평소에 개를 어떻게 키웠는지 예상이 된다. 개가 아파도 죽으면 죽도록 방치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물에게 병원치료는 사치! 아프면 죽도록 내버려두는게 자연의 순리! 라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전시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보리는 생후 7개월이 될 때 중성화수술을 했는데, 보리의 엄마 개 견주가 그 사실을 알고 왜 개를 중성화수술을 시키냐며 뭐라한 적이 있다. 그런거 시키면 안 된다, 자연의 순리대로 키워야 한다, 하면서 도무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유사과학 수준의 이론과 주장을 펼쳤다. 물론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중성화수술을 시켰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단위로 심장사상충 약을 먹이고 1년 단위로 심장사상충 키트 검사를 하고 맞추어야 할 백신을 맞추면서 키웠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나에게 고작 개에게 유난 떤다고들 말했다. 개가 죽으면 죽는거고 아프다가 죽는게 당연한 자연의 순리인데 왜 개에게 돈을 들이냐는 것이다. 성격 같아서는 내가 내 개를 돈 들여서 키우겠다는데 뭐 그렇게 신경쓰냐, 관심 꺼라. 라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물론 동물병원 비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부담스러운 것은 맞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키우는 동물이 아픈데 치료를 하지 않는 것 역시 명백한 동물학대임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키우는 동물에게 돈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나 아까우면 당신은 동물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개 뿐만 아니라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키우는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만의 공간에 나와 다른 생명이 들어오는 것이기에 그 생명을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고 돌보려는 노력과 돌보는 데에 필요한 경제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셋 중 하나라도 받쳐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어떤 생명도 키우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런 사람은 생명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에는 개에게 매 년 한화로 14만원에서 7만원의 동물 보유세를 매겨서 걷고 있다고 한다. 세금을 걷는 대신 개들은 공원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많은 공원에는 반려견 놀이터가 따로 있다. 세금을 걷는 만큼 국가에 개를 등록하는 제도도 철저하다. 반려견은 등록번호가 저장된 내장칩 또는 문신으로 등록을 해야 하며 등록 번호, 전염병 예방접종 정보, 혈액검사 결과를 기록한 공인 수의학 증명서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서류의 발급 비용은 수백만원이고 발급까지 많은 시간도 소요된다. 그만큼 개 한 마리를 키우는 것에 정성을 쏟는다는 뜻이다.


 2020년에는 독일 정부에서 반려견을 하루 1시간 이상 산책시킬 의무를 법제화하기도 했다. 처벌 조항은 없지만 그만큼 반려견의 복지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이 법을 발의한 줄리아 클뢰크너 농림부 장관은 "개는 갖고 노는 인형이 아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욕구를 존중해야 한다"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개를 키울 자격이 있니 없니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나에게 "너가 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준비되어있지 않고 준비 또는 변화할 의지조차 없는 사람이 개를 키우면 개도 사람도 모두가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개는 장난감이나 인형이 아니다. 단순히 먹이만 주고 몸 뉘일 개집 하나만 던져준다고 끝나지 않는다.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 등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 없이는 모두가 고생하고 힘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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