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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Sep 01. 2022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삶을 놓아버리진 말아요



 (환자의 정보는 명확히 밝히지 않으며, 대화 내용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 선 내에서 각색했습니다.)



 병동에는 환자가 나를 포함해서 10명 남짓 있었고 그와 비슷한 인원수의 간호사님과 보호사님 두 분, 병동 내 보안직원 한 분이 계셨다.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확실히 환자 수가 적었고 그만큼 치료진들의 밀착 관리가 가능한 환경이었다.


 내가 있었을 때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자해를 해서 들어온 10대 청소년 둘, 조현병이 있는 30대 남성 한 분, 우울증으로 입원한 30대 여성 한 분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 및 시도로 들어온 20대의 나까지.


 처음 폐쇄병동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곳에서 아무도 사귀지 않고 아무와도 어울리거나 말을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 곳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고 어딘가 정신이 나가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입원 첫 날 자해를 시도해서 안정실에 끌려갔다온 이후로 병동 내 환경과 사람들이 무서워서 극도로 피해다녔다.


  그러다가 점차 안정되면서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사람들에게 조금씩 말을 걸어보았다.


 폐쇄병동에 입원하면 병동 복도의 끝과 끝을 산책하듯 걸어다니면서 돌아다니는게 일상 중 하나다. 처음에는 왜 저러지? 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복도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와 대화를 해본 사람은 그 곳에서 만났다.


 그 사람은 복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생물학과 관련된, 다소 어려운 내용의 책이었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생물학을 꽤 잘했고 대학교에서도 생물과 관련된 전공을 했기 때문에 그 책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거실에서 미니 의자를 가져다가 그 사람 옆에 앉고는 대뜸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30대로 보이는 남자 분은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자신은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종류의 다양한 책을 읽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 전공 얘기를 간단하게 하면서 학과 동기들은 다들 밖에서 열심히 돈도 벌고 사회생활도 하고 있을텐데 나는 이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썩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내 말에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요. 어떻게 사람이 항상 열심히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살면 고장나요. 그리고 고장난 상태로 계속 열심히 살면 더더욱 고장나서 고치는데 시간도 더 들어가고 어려워져요. 지금은 그냥 쉬어요.


 그 말을 듣는데 머리가 멍해졌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쉬어도 된다는 말을 그 누구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다. 항상 뭔가를 꾸준히 하기를 요구했고, 쉬어선 안 된다며 공백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쉴틈없이 학원을 다녔다. 대학교 시절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전공에 매달렸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엄마의 강요로 어느 회사에 원하지 않는 입사를 하고 그 곳에서 쉬지 않고 일하면서 회사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난생 처음 듣는 쉬어도 된다는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하게 들리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한 분은 내가 병동 거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오셨다. 이 곳에 왜 왔냐고 물어보셨다. 폐쇄병동에서는 이 곳에 왜 왔는지가 환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고식과도 같은 말이다. 나는 자살시도를 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 익숙해져있었고 아픔에 무뎌져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너무나 덤덤한 표정으로 자살하려고 했어요 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그 분은 잠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삶을 놓아버리지는 말라고. 그냥 살아만 있으라고.


 어쩌면 내가 병동 내 환자들에게 차별어린 편견을 갖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곳에 모두 적을수는 없지만 폐쇄병동에서 만났던 그들은 다들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단지 정신병동에 입원해있다는 이유로 이상하고 미친 광인들이라고 프레이밍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 역시 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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