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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Dec 28. 2023

내가 괜찮다는데 왜 니들이 설레발치니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면 좀 있는 그대로 알아처먹어 짜증나게 하지 말고


 나는 병자야. 나도 알아. 아마 평생 고칠 수 없겠지. 이게 나라는 인간의 모습일 거야.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돼. 이게 내 삶이니까. 더 이상 당신이 내 삶을 휘젓는 걸 용납하지 않겠어.



마블 코믹스 문 나이트 Vol.2 <탄생과 죽음(Birth and Death)> 中



 개인적으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블의 히어로 중 한 명인 문나이트는 상당히 좋아한다. 그래서 유일하게 mcu 캐릭터 중에서 문나이트는 좋아하고 문나이트 코믹스도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읽곤 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나마 갖고 있는 정발 마블 코믹스도 문나이트 코믹스, 디즈니 ott인 디즈니 플러스도 문나이트를 보기 위해서 정기결제를 하고-문나이트 이외에 다른 콘텐츠도 보긴 하지만-있을 정도니 이 이상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주인공 마크 스펙터는 어린 시절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가 발병하면서 스티븐 그랜트와 제이크 로클리라는 인격이 생겨나고 소위 말하는 다중인격이 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콘슈라는 달의 신에 의해 문나이트가 된다. 서양에서 달 특히 보름달 하면 떠오르는 광기의 이미지가 더해져 이러한 캐디가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 개신교에 있을 때 개인 블로그에 정신과를 다녀왔다는 글을 올렸다가 같은 교회 사람에 의해 털리면서 나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온갖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알려졌다기보다는 타의에 의해 까발려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거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있던 단톡방에 내 블로그 링크와 함께 내가 정신병이 있다는 글을 올리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정신병에 걸릴 수 있냐는 말까지 등장했다. 톡 내용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건 너무 무례하다, 사과해달라, 라고 요청했지만 끝끝내 나는 그 사람에게서 사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온갖 쓸모 없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병원에 가지 말고 신앙으로 해결하라는 가치 없는 소리를 해댔다. 거기에 따라붙은 어설픈 동정이 섞인 눈빛과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은 필수였고 내가 딱히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닌데 과하게 나를 배려하며 특별취급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말과 눈빛, 표정, 태도 하나하나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지만 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기분은 나쁘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동생에게 "너희 언니 불쌍하더라" "너희 언니 아직도 약 먹냐?"와 같은 말이 돌아가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개신교를 떠나 개종할 결심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이 집안에서 유일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어찌어찌 참을 수 있어도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나를 빌미로 무례함을 표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에 의해 갖게 된 종교를 버리고 내 길을 알아서 찾아 떠난 셈이다.


 사람들은 내가 괜찮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불쌍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거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가 나는 이대로 살아도 그게 내 삶이기에 괜찮고 세상이 엎어지던 거꾸로 뒤집어지던 상관 없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내 말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지극히도 본인들 관점에서 정상성에 집착하는 시선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은 씁쓸하면서 불쾌하고 기분나빴다. 나를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볼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우리 정신과 의사쌤 뿐이니 나머지는 알아서 가만히 짜져서 본인들 주제를 파악해라 라고 말해도 소용 없는 짓이었다.


 이제는 떠나온 곳이지만 그 곳의 사람들에게 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정해야 하고 불쌍하며 특별취급해야만 하는 존재, 아니면 정말 싫지만 교회 사람이니 어쩔 수 없이 상대해주는 인간, 또는 참을성 없이 나대면서 이단으로 간 멍청한 놈. 딱 이러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교회를 벗어나 지금까지 약 2년간 핸드폰 번호를 수 없이 바꾸고 카톡을 두 번이나 탈퇴 후 재가입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탈퇴 후 새로운 계정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나도 굳이 나를 어설프게 동정하고 같이 어울리기 싫어하는 인간들과 관계를 유지할 생각은 없기에.


 지금껏 덕질하면서 또는 그 외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고 안 좋게 갈라서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안 좋게 갈라선 경우가 아닌 이상 아쉽게 헤어지더라도 어디에 가서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상당히 좁기에 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기에 인연이 닿는다면 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만날 것이라는 생각도 있기에 정말 나에게 큰 문제를 준 경우가 아닌 이상 어디에서던 잘 지내기를 바라곤 한다. 하지만 희한하게 교회 내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그게 되지 않는다. 상상도 가지 않는다. 내가 정신과 외래를 다닌다는 이유로 온갖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나를 속상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상처준 인간들이 인연이 된다면 어디에선가 만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잘 살으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고 그다지 착한 인간은 아니기에 그런 것일까. 굳이 저주하고 싶은 생각도 딱히 없지만 그렇다고 잘 살고 행복하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 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듯 싶다. 그런 인간들이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안다고 하면 그 때 이상으로 더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아, 이런 생각은 있다.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에 맞게 정신을 차리고 인생을 살으라고는 말하고 싶다. 본인보다 최소 20살은 어린애 블로그를 캐서 남의 사생활을 까발리고 다니는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인간이라면 종교를 떠나 그냥 손절감 0순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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