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Dec 16. 2023

밤이 깊어져서 그런가

얼굴도 기억나지 않으면서 보고싶다고 생각한다니


 달력을 보고 나서야 무려 10번째 기일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울이 기일이라 12월에 접어들면서 어느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벌써 10번째라니.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간다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이제는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은 흐릿해져서 이름만 겨우 기억나는 그 친구의 기일에 다시금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두 번째 물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 확실히 알게 한 그 날의 잔상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는 의미겠지. 몇 년간 1차급 의원부터 3차급 대학병원까지 정신과를 전전하며 만난 온갖 의사들한테는 말하지 못하다가-또는 말하지 않다가- 지금의 의사쌤에게는 말해도 괜찮겠다 해서 있는 그대로 말했고 그건 뫄뫄 씨 잘못이 아니에요. 라는 말을 들었지만 1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 나는 그 사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언제가 되면 확실히 수용할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생전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나와 같은, 개신교 집안에 태어나 개신교만을 알던 아이였다. 그 일이 있고 한참 지나서 종교의 자유를 앞세워 내 종교는 내가 결정하겠다고 우겨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니까. 그래서 개신교 신자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 친구의 기일에 내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연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옳은 짓일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당사자의 배경은 무시하고 내 편의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그 친구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니까 그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숨김 없이 다 말했기에 그동안과 비교했을 때 그나마 나은 것이려나. 그런걸 보면 자신에게 솔직해짐으로서 위로를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해짐으로서 도움을 받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밤이 늦어서인지 조금은 보고싶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으면서 뭘 보고싶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사는 것이 이런 건가.




작가의 이전글 연말이지만 즐겁지는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