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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Mar 04. 2023

친했던 언니에게 블락당했을 때

손절은 아프다기보다 씁쓸하다


 근래에 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에게 차단을 당했다. 인스타그램 맞팔 인원수가 20명도 되지 않기에 누구누구랑 맞팔 상태인지 기억을 하고 있는데 인원수가 줄어서 찾아보니 그 언니가 사라져있었고 나를 이미 차단한 상태였다. 어이가 없어서 차단된 프로필을 한참이고 쳐다보다가 조용히 뒤로가기를 눌러 카카오톡에서 언니와 대화한 내용을 삭제하고 번호도 지웠다.


 언니랑 내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곱씹듯 조금씩 떠올려보았다. 내가 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이었지만 거리감이 대폭 좁아진 것은 내가 대학생 때부터였다. 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의 말로는 당시 나는 상당히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단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급속도로 망가진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하기야 나 자신조차 낯설게 보였는데 남들 눈에는 어땠을까.


 당시 언니는 나에게 약도 좋지만 근본적으로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해결된다는 말을 몇 번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는 그 말은 되도 않은 개소리라 생각했다. 그냥 가볍게 무시하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종류의 말에 더욱 지쳐있었기에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거다 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종종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언니는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식의 말을 대놓고 하곤 했다. 그런 말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나는 이 언니와 거리를 두던가 아니면 손절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언니는 내가 점차 교회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언니 자신이 생각한 나와 현실의 내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블락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교회를 그만 가겠다고 제대로 다짐한 이후로 연락을 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한 때였어도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떠나가는 것은 언제나 씁쓸하다. 점차 멀어질 때 예상했던 일이고 애초에 교회를 안 가면 이 인간관계를 잃을 것을 예상했지만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싶기도 하다.


 언니. 잘 지내요. 뭐가 어찌되었던 함께 지냈던 시간이 있으니 언니가 잘 지내길 바랄게요.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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