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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un 06. 2023

세상 끝의 집


 수녀님과의 1대1 면담에서 수녀님은 내 인적사항 서류를 보시더니 꽤 멀리서 오시네요? 라고 하셨다. 그럴만한게 내가 예비자교리로 출석하고 있는 성당은 명동성당이고 서류상 집 주소는 경기도에서 약간 외곽으로 되어 있다. 서류만 그렇게 되어있는거면 모르겠지만 실제 그 주소에서 살고 있고 주일 아침마다 거기서 명동까지 가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긴 하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발한다고 대답했다.


 어느덧 현재 주소지로 이사를 온 지 몇 년이 지났다. 그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대여섯 번의 입퇴원과 모두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응급실 내원이 있었고 적지 않은 숫자의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20대 중반에 처음 병원에 발을 들여서 시간이 이렇게 지나서 나는 30대 초반이 되었다. 내가 30대가 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체감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동생이 자차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독립한 직장인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실감난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는 것을.


 처음에는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길어야 일 년 정도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끝나지 않았다. 단순 우울증으로 시작된 서류상 진단명은 정신차리고 보니 양극성장애 2형과 불안장애 그리고 약간의 공황이 얹어져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이러자 원래 살던 곳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서울하고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경기도의 약간 외곽지로 집을 옮겼다. 도심하고는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서울을 오가기가 쉽고 병원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사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방 하나를 내가 쓰게 되면서 나는 이 방을 '세상 끝의 집'이라고 이름붙였다. 하필 세상 끝이라 표현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세상의 사각지대에 서게 된 내가 거의 유일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란 뜻이고 또 하나의 의미는 더는 이 이상으로 밀려나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이 곳이 세상 끝의 집이길 바라는 것이지 세상 끝자락에서 떨어지는 자리이길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글은 그 곳에서의 케케묵은 기록 묶음이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던 그 공간, 좁은 방의 내 침대 바로 옆 흔들의자에서의 글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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