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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un 11. 2023

응급실에 다녀오다

지겹고도 지치는 그 곳


 언제가 마지막 응급실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작년 상반기 말에서 하반기 초 즈음이지 않나 싶다. 그 날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새벽 첫 차가 다니기도 전에 진료를 받고 나와서 천천히 걸으며 다시는 응급실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치적대는 수액카테터를 달고 정신없으면서 낯선 환경 속에서 생판 처음 보는 정신과 레지던트의 불편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불편하고도 불편한 경험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자살 충동으로 환자가 왔으니 환자 입장에선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물어보고 입원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건 당연한데 정말이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다시는 갈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응급실을 지난 주에 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충동은 계속 드는데 평소 외래를 가는 병원은 그 주에 통째로 휴원한 상태였다. 그냥 참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비상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두려웠다. 그래서 정신과 응급진료가 가능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몇 달만에 간 응급실은 평일 낮이었음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고 정신없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응급의학과 의사를 만난 뒤에야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수액을 맞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서 정신과 레지던트와 면담을 받았다.


 의사는 계속해서 입원을 하라며 강력하게 입원을 권유했다. 지금 계속 이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를 아직 모르겠냐며 격리된 환경에서 치료받으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스케줄이 있냐, 스케줄이 끝나면 그 때라도 응급실에 와서 입원해라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상당히 묘한 기분과 함께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정신적 문제가 생겨서 계속해서 이러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지만 왜 하필 나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명색에 천주교인이 되겠다고 제 발로 성당까지 찾아갔는데 아무리 병증이라도 죽고싶어한다니. 너무 모순적이다. 천주교에서 자살은 정말 큰 죄인데 그걸 알면서도 그런다니. 그 생각이 아무리 병증이라고 해도 정말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당장 이틀 뒤에 평소 가던 병원 외래를 가야 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 자꾸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거라며 혼내듯 말하는 이 의사쌤에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고민은 계속 했지만 고민을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진 않는 것 같다. 어디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고 괜히 주변에 쓸데없는 걱정을 덧붙이고 짐지우고 싶지 않아서 sns에는 애써 장난치듯 응급실 왔는데 의사가 싸가지없어ㅋㅋ 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그저 웃으며 흘리듯 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는 아니다보니 고민이 많다. 생각은 괜히 늘어나고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 밤이다. 그냥 잠이나 자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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