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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15. 2023

서현역 칼부림 사건을 보며

여전히 세상은 혐오에 찌들어있고 그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지만


 8월 3일 나는 친한 동생을 만나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인도식 짜이를 마시며 덕톡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실컷 놀고 난 뒤 돌아가는 길에 과슈 물감이 부족한게 생각났다. 내가 자주 가는 미술재료상은 분당 서현역 부근에 있다. 나온 김에 서현역을 들러 과슈 물감도 사고 근처에 교보문고랑 영풍문고도 있으니 책이나 구경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역에서 카페까지 왔다갔다 한답시고 잔뜩 걸으면서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했고 더운 날씨에 귀찮은 마음이 들어 다음에 가야겠다 하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게 8월 3일 오후 5시 즈음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익숙하게 트위터를 켰는데 분당에 사는 트친 한 분이 이 쪽 동네에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며 다들 조심하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걸 보고 세상 참 험악하다, 그나저나 내가 사는 곳과 나름 가깝고 내가 자주 가는 곳에서 칼부림이라니 무섭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까지는 그 장소가 서현역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집에 다와갈 즈음 터널에서 다시 트위터 탐라를 내리는데 분당에서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는 속보 뉴스를 보았고 그 장소가 다름아닌 서현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뉴스를 보고 난 뒤 버스에서 내려서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지금 다시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그 날 내가 생각한대로 서현역을 갔다면 나는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안 그래도 엉망인 정신건강이 더 망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 내가 서현을 가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다행이지만 그 곳에서 피해를 보신 피해자 분들과 두려움에 떨었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다.


 당시 범인은 바로 잡혀서 체포되었지만 이후 범인이 정신과 진료 이력이 있고 정신질환을 진단받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기사가 마구잡이로 올라왔다. 그 기사를 보면서 나는 자칫하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뜨자마자 트위터에서 스멀스멀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 트윗이 보이기 시작했고 가족 중에 특히 형제자매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으면 인연 끊고 도망가라는 트윗까지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트윗을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정신질환 당사자고 이미 예상은 하고 있지만 아마 평생 낫지 않을 것이다. 그저 병원을 왔다갔다하고 약을 먹으면서 상황과 상태에 따라 조절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한테는 두 살 아래의 친동생이 있다. 지금은 직장 문제로 다른 시에 거주하지만 나에게 무관심한 엄마와 자기 종교만이 답이라고 우격다짐 식으로 우기는 아빠에 비하면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기에 동생과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정 필요하면 동생이 병원 측과 연락하는 실질적인 보호자가 되어있다. 그런데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동생을 괴롭히고 나는 없어져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트윗과 타래를 보니 감정이 복잡해졌다.


 내가 짐일 수는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다. 애초에 나도 정신질환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니까. 단지 살다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들이닥친 것이고 그거에 대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그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딱 그것 뿐이다. 그런데 마치 내가 처치해서 제거해야만 하는 괴물인 마냥 말하는 사람들의 날선 말에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수자로서 살다보면 정말 다양하고 신박한 혐오 표현을 접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납작한 혐오주의자들의 납작한 혐오 표현에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매 번 그렇게 하더라도 막상 대면했을 때에는 내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여전히 더 많다. 언제쯤이면 그런 표현들에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웃으며 넘길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오더라도 내가 관짝 브이로그를 찍는 날에나 오지 않을까.


 세상은 분명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느리고 특히 한국 사회는 갈 길이 매우 멀기에 더욱 더디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바뀔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혐오 표현을 보면 그 마음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소위 인류애가 사라진다고 해야하려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믿어보고 싶다. 나쁜 혐오주의자들이 있는 만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다고. 그리고 세상은 궁극적으로 혐오주의자들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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