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만으로 만족하도다
토요일이라 미루었던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은 뒤 주일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갔는데 본당 주보에 낯선 말이 적혀 있었다. 본당에서 소임을 마치고 떠나시는 주임 신부님 그동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보고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한참을 얼어붙은 것마냥 그 문구만 쳐다보았다. 주보를 펴보니 교구 내 사제 인사이동 명단이 쭉 적혀있었다. 그 가운데 몇 달간 익숙하게 봐왔던 본당 주임 신부님의 성함과 함께 원래 계셨던 곳과 새로 가시는 곳이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 전에 어디선가 천주교 성당은 신부님과 수녀님의 인사이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천주교인 친구에게 카톡으로 물어보니 보통 보좌신부님은 2년 주임신부님은 5년 수녀님들은 2년 단위로 인사이동이 있다고 했다.
상당히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라 좀 충격적이기도 했고 살짝 우울하기도 했다. 방금 봉헌초를 제단에 올리러 가면서 주임 신부님을 잠깐 뵈었는데 항상 계실 것이라 생각했던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가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복잡해졌다. 항상 느슨한 연대 특히 성직자와 의사쌤하고는 1미터에서 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매우 느슨한 연대관계를 추구하는 나지만 그래도 지금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서 발생하는 헤어짐은 상당히 사람을 인간적으로 섭섭하게 하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사람을 믿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언젠가는 나를 떠날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것도 갑자기 다른 성당으로 인사발령 나서 가신다고 하시니 개인적으로 주임 신부님을 신부님으로서 좋아했던 예비신자 1은 그냥 섭섭할 뿐이다. 그래서 사실 미사 내내 기분이 그닥 안 좋았던 것도 있다.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인지 마음이 안 좋았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켠으로 섭섭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티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주임 신부님께서 자신을 싫어하는 신자 분들에게 그 신부 이제 갔다고 전해주세요 하시는 얘기를 들으며 애써 웃었지만 상당히 묘하고도 씁쓸하고 섭섭했다.
신부님은 내가 지금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주일미사를 드리러 간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셨다. 예비자교리 자체는 명동에서 듣고 있었지만 주일미사는 다른 곳에서 드려도 된다고 공지를 받았기에 가기 시작한 곳이 지금 내가 토요일 저녁에 주일미사를 드리러 가는 본당이다. 원래 거주지 주소로 따지면 다른 곳에 가야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교통편이 상당히 안 좋고 그 성당이 상당히 안쪽에 있어서 가기가 불편한데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서 급히 병원이나 응급실을 가야 한다고 하면 정말 일이 꼬여버리기 때문에 주소지 상으로는 아니지만 사는 곳에서 가까우면서 교통편도 괜찮고 병원도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름 가까이에서 신부님들을 봐왔고 제가 예비신자인데 성모의 밤을 가도 되나요? 하는 바보에 멍청하고도 웃긴 내 질문에 그럼요 오실 수 있으면 오시면 좋죠! 하고 흔쾌히 대답해주셨던 주임 신부님이기에 인간적인 섭섭함이 참 많이 앞서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 가시던 하느님과 함께 하시니 그거로 충분하고 그 이상의 섭섭함이나 씁쓸한 감정은 지극히도 내 인간적인 것들이니 지금은 인간적인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고 새로 가시는 성당에서도 사제로서 그 몫을 하시고 잘 지내시기를 바라는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인간적인 섭섭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왕 보내드려야 한다면 잘 보내드리고 싶다. 그리고 새로 가시는 곳에서도 잘 지내시기를 기도하고 싶다.
주임 신부님 석 달간 감사했고 새로 가시는 곳에서도 잘 지내시고 항상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