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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23. 2023

그냥 조금 도움이 필요할 뿐이에요

글쎄 난 부서지지 않았다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슬금슬금 놓고 코믹스 특히 원서 코믹스 쪽으로 기울어진 내 덕질 유형이지만 그럼에도 앤간하면 mcu를 한 번은 보자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mcu를 딱히 좋아하지 않고 흔히들 망겜이라고 부르는 엔드게임부터 닥터 스트레인지2까지 보면서 이건 아니어도 정말 아니다 싶어 조금씩 mcu를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직까지 잡고 있는 mcu 작품이 있다. 바로 페이즈4의 마블 드라마인 <문나이트>다.


 문나이트가 상당히 마이너한 마블캐이기도 하고 코믹스마저 두 권 정발이 전부라 한국에서는 '저 마블에서 문나이트 좋아해요'라고 하면 그뭔씹 소리를 듣기에 딱이지만 당사자로서 이 캐릭터를 안 좋아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DID(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 마크 스펙터와 그의 또다른 인격인 스티븐 그랜트와 제이크 로클리, 거기에 그들을 아바타로 부려먹는 이집트의 달의 신 콘슈까지 해서 분명 mcu임에도 mcu스럽지 않은 연출과 전개로 실시간 스트리밍이 되는 내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의 초반에 주인공의 다른 인격인 스티븐에게 빌런캐는 "콘슈가 자네를 택한 것은 이미 마음이 부서져있기 때문이겠지?"라는 식의 말을 던진다. 이 말에 스티븐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는 부서진게 아니에요. 그냥 조금 도움이 필요할 뿐이에요."


 그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도 그렇고 반복해서 문나이트 드라마를 보면서 듣고 또 들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당사자라서 하는 말임을 넘어서 상당히 많은 일에 적용되는 말이기에 처음 들을 때에부터 지금 다시 들어도 맞는 말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직전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가 네 번째 폐쇄병동 입원이었다. 또 지긋지긋한 이 곳을 와버렸다는 생각에 비참하고 절망스러워서 침대 위에서 꿈쩍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만 했던 때가 있다. 남들은 저만치 달려가는데 나는 여기서 썩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치료를 방해하고 퇴원일을 늦춘다는 것을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네 번이나 폐쇄병동에 와버렸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부서질대로 부서졌고 이전처럼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신체건강에서도 한 번 고장났다가 회복된 부분은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듯 정신건강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한 번 무너졌던 정신건강은 어찌어찌 다시 쌓아올린다 해도 이전처럼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본인까지 스스로를 놓아버리면 계속해서 끝없이 무너지다가 완전하게 붕괴되는 것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되뇌일 수 있는 말은 '나는 부서진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것 뿐이다'는 말이다.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비참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는 의미에서 스티븐의 그 대사는 딱 적절하지 않나 싶다.


 여담이지만 드라마가 중후반으로 달려가면 "스스로를 돕지 않는 사람은 나도 도와줄 수 없어"라는 말도 등장한다. 자신이 부서졌으니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어떤 유능한 전문가를 붙여주어도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제아무리 유능한 전문가라도 나아지려는 의지가 없으면 어떻게 해줄 수 없다. 그런 것을 보면 궁극적으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지 않나 싶다. 전문가들은 그저 거기에 거들 뿐 결국은 내가 해야 한다.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그저 붕괴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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