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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Oct 04. 2023

날이 선선해지고 겨울이 다가오고

반갑지 않은 날짜의 열 번째 날도 돌아오고


 식목일에 반팔 옷을 꺼내고 개천절에는 긴팔 옷을 꺼내라는 말이 있다. 식목일이 지나면 날이 따뜻한 것을 넘어서 더워지고 개천절 이후부터는 선선해지다가 훅 추워진다는 의미다. 어쩐지 개천절이 지난 오늘 날씨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일이 있어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범상치 않은게 생각보다 서늘해서 가디건을 걸치고 나왔다. 낮이 되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가디건은 가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만큼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다.


 날이 선선해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여름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일이 떠오른다. 이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그 날의 그 사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게 훅 치고 들어온 그 일. 2014년 1월 말 나랑도 친하게 지냈던 동생 친구가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일이다. 여름 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너무 충격적이라 잊을 수 없었던 그 날의 기억이 선선한 날씨와 겨울바람을 타고 훅 들이닥치곤 한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겨울을 안 좋아하게 되었다. 겨울도 안 좋아하고 당시 사고와 관련된 장소도 사람들도 물건도 싫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다 한들 그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자꾸 생각나고 내가 너무 괴로워서 그 당시 그 일과 연관된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연을 끊어버리고 나는 여러 번에 걸쳐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카톡을 몇 번 탈퇴했다가 재가입하는 것으로 나름의 정리를 했다.


 와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지금은 그 일에 대해 어느정도 받아들였고 그 사건의 그림자에서 많이 벗어났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충격과 죄책감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날씨가 서늘해지고 이제는 10번째로 돌아오는 그 아이의 기일이 생각났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그 날의 날짜와 장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묶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 얼굴도 목소리도 생일도 가물가물해지고 이름과 당시 나이 정도만 간신히 기억나지만 어찌되었던 최대한 좋았던 기억만 들고 가고 싶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나와버린 탓인지 시간이 비어버리기도 하고 근처에 성당도 있어서 초 봉헌을 하며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비록 그 아이는 비신자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기를 바라며.


 돌아오는 기일에 맞춰서 연미사 봉헌이라도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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