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Oct 20. 2023

인스타툰을 다시 시작하다

가톨릭 교회 내에 나 말고 다른 성소수자 신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한


 7월 말 즈음에 없앴던 인스타툰 계졍을 다시 열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삭제 후 한 달이 지나면 영구삭제가 되기 때문에 새로 계정을 만들어야 했다. 계정을 만들기 위해 완전 별개의 지메일 계정을 하나 열었고 그 이메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원래 인스타툰 계정이 있었고 그 곳에서 나는 예비신자 일상을 기록하곤 했다. 하지만 기존에 가톨릭툰을 그리는 사람들과 엮이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차 불안해졌다. 혹시 내가 이 곳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하는 시뮬레이션도 정말 많이 돌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결론은 만약 아웃팅을 당하던 내가 자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던 어쨌던 나는 돌 맞고 쫓겨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 분위기 내에서 슬슬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후에 세례를 받은 뒤에도 성당 내 그 어떤 단체에서도 활동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을 결심했기에-이건 꼭 반드시 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과 관련 없이 이전에 개신교에서 당했던 경험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기의 경험으로 인간에 대해 질리기도 했고.- 그에 대한 생각을 사실상 하고 있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훅 치고 들어오는 가톨릭툰 바닥의 사람들을 보면서 인스타에 뭔가를 올리기가 무서워졌다.


 항상 그 사람들로 인해 나는 불안했고 별다른 일이 없음에도 긴장된 상태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다 이 사람들에 의해 아웃팅을 당하는 악몽까지 꾸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온갖 자질구레하고도 이상한 핑계를 대며 계정을 없애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올리고 나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에 크게 한 몫을 했던 가톨릭툰 작가가 나에게 디엠으로 내가 세례를 받으면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초대하려 했다는 말을 보낸 것을 보고 식겁해서 반드시 계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계정을 터트리고 아예 묻어두었다.


 계정을 없애고 한참동안 인스타에서 나는 벽장 속에 숨어있었다. 잠금 설정을 해둔 본계에서 내가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마음껏 드러내고 퀴퍼 인증샷을 올려도 괜찮은 소수의 사람들만 모아둔 상태에서 지냈고 대충 석 달 정도를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인스타툰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생겨났다. 원래 계정을 다시 만들려고는 했지만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욕을 먹을 것을 생각하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 꿋꿋하게 버텨야겠다고 다짐했다.


 세례식을 2주 남짓 앞둔 상태에서 나는 인터넷에서 온갖 단어를 조합해가며 관련 글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블로그의 글을 읽다가 프로필에서 이 분이 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글을 올리신 지는 꽤 되어보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밀댓글로 나도 이반이고 2주 뒤에 세례를 받는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 업뎃을 하신 지 꽤 되어보여서 연락이 안 올거라 생각했는데 몇 시간 뒤에 답글과 함께 블로그 서로이웃을 신청하신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 블로그 서로이웃이 되었고 세례식 당일 나와 내 친구와 함께 그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서로의 트위터를 맞팔하기까지 했다. 이를 보면서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지금 당장 대놓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톨릭 교회 내에도 숨어있는 성소수자 신자가 더 있을거라는 생각에 인스타툰으로 당신만 가톨릭 내 성소수자 신자가 아니며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다 있고 그와 관련된 모임도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인스타툰 계정에서 혐오 테러나 항의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디엠을 막아두고 인스타툰과 관련 일러스트를 올리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혐오가 걱정되기는 하다. 이전에 서울주보에 성소수자와 그 부모에 대한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신 신부님도 그에 대해 항의를 받으셨다고 하고 종종 성소수자 가족이거나 부모이거나 또는 그냥 앨라이일 뿐인데도 욕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니 당사자인 내가 입을 열었다가는 어쩌면 정말로 맞아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걱정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도 더는 도망치거나 벽장 속에 숨고 싶지 않다. 소위 말하는 혐오종자들이 욕을 하던 혐오발언을 하던 그건 그들이 잘못하는 것이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이기에 내가 거기에 휘말리지 않고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싶다. 납작한 혐오종자들의 재미도 감동도 없는 납작한 주장에 흔들리기는 싫다. 나 외에 단 한 명이라도 가톨릭 교회 내에 성소수자 신자가 있는 이상 계속 인스타툰을 연재할 것이다. 백 명도 열 명도 아닌 한 명이라도 있는 한 멈추거나 도망치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날이 선선해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