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 그리고 대단원의 마무리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의 관문일 뿐

by 울새


10월 15일 명동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현 날짜 기준으로 겨우 하루 지났건만 너무 정신없다보니 기억이 나는 것도 없고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후다닥 지나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리반 단체사진을 찍은 뒤였다. 이게 원래 이런건가, 싶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던 진짜 예비신자 교리가 확실히 끝났구나 하는게 실감났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기억나는 것은 우시는 분들도 좀 보였는데 나는 일절 그런게 없었다는 것이다. 세례식 때 안경을 벗고 나가야 하는데 근시보다 난시가 심해서 그게 불편했지 눈물은 희한하리만큼 조금도 나지 않았다.




세례식 동안은 사진 촬영이 불가해서 시작 전에만 무음 카메라 앱으로 한 장 찍었다. 명동성당을 그렇게 왔다갔다 했건만 이렇게까지 앞자리에 앉은 것은 처음이라 후덜덜했다. 항상 뒤쪽을 선호해서 뒤쪽에 앉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앞에서 제대를 보니 떨리기도 하면서 신기했다.




단체사진까지 찍고 후다닥 내려와서 젤라또집에서 열심히 수다를 떨다가 저녁을 먹고 집에 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대모를 해 준 친구에게 받은 꽃다발을 풀고 줄기 커팅과 컨디셔닝을 다시 해서 화병에 꽂아두었다. 이럴 땐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웨딩 플라워 일을 했던게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꽃다발을 너무 못 만들어서 웨딩 플라워를 했던건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리고 축하해주러 오신 블로그 이웃 분께 선물받은 인센스도 끌러서 세팅해두었다. 디퓨저 종류를 좋아해서 안 그래도 하나 새로 할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선물받아서 반가웠다.




기도문을 모두 외워서 모범상으로 받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액자. 개인적으로 암스테르담에 갔다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감명깊게 본 기억이 있다. 이전부터 서양 예술사 덕질을 하기도 했고 빛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빛 사용에 섬세하면서 탁월한 명암 표현을 그려낸 렘브란트의 예술세계에 반해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이 그림을 발견했는데 탕자인 아들을 감싸안는 아버지의 손의 골격 형태가 특이하다는 것을 봤다. 한 손은 여성의 손인데 한 손은 남자의 손을 묘사해서 정말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이 그림을 모범상으로 받게 되다니.


참고로 렘브란트는 화가로서 성공한 인생을 살다가 점차 내면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자화상을 많이 그리면서 소위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다가 암스테르담 자경단 협회의 의뢰를 받아 그린 <야경>이라는 단체 초상화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그 일로 화가로서 명성이 완전 죽은 것은 아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탓에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결국 파산하고 유대인 구역의 허름한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애와 <돌아온 탕자>가 사실상 그의 유작인 것을 생각하면 그는 자신이 탕자처럼 흥청망청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렘브란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그의 의견이나 생각을 물어볼 수 없고 애초에 작품이란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이후부터는 독자의 몫이라고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말년에 이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친구에게 선물받은 수제 미사보와 친구가 가죽으로 만든 미사보 주머니. 나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정말 과분하게 많이 받아서 고마웠다.


6개월의 대장정이 이렇게 일단 끝났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고 얼떨결에 끝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던 끝났다. 물론 그 끝났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현세에서의 죽음은 두아트에서 심판을 거쳐 세케트 아아루라는 내세에서의 부활과 영원한 삶으로 이어진다고 했고 북유럽 신화에서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전사는 발할라 라는 사후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도 죽으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고 그 끝은 시작으로 가는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였으면 끝내기도 전에 지쳐서 떨어져나갔을 이 기간을 꾸준히 오면서 버틸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대모를 해달라는 뜬금무 요청에 흔쾌히 수락해주고 함께 성지순례도 다녀주고 이 날 나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준 친구와 초면이지만 축하해주러 와주신 블로그 이웃 분, 내 일처럼 도와주신 많은 분들과 연대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신부님들 수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 외에 모두 적지는 못하지만 그간 도와주시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신 다른 분들께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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