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유능한 전문가라도 그건 확실하게 불가능해
MCU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페이즈4에 처음 등장한 히어로 문나이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CU를 간당간당하게 잡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는 다소 어렵게 들리는 정신질환-예전 말로 하면 '다중인격'이라고 하는-을 가진 주인공 마크 스펙터가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신 콘슈와의 계약으로 문나이트가 되어 활약하는 이 드라마에서 4화에 빌런 캐릭터 아서 해로우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이 나온다.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사람은 나도 도울 수 없어. 라고.
주변에서 누군가 정신과적 이슈가 있어보이는 말을 하면 예전에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서 병원을 가보라고 설득을 하고 얘기를 해보기도 했다. 나 자신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인간이 그런다는건 정말 이중적이고 이상하게 보이지만 전문가를 찾아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지는 할 수 있었기에 그러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건 정말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사자 본인이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그냥 말짱 꽝이라는 것도.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더는 겪고 싶지 않아서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몇 번 병원에 가보라는 조언을 하고 그래도 안 먹히면 그 때 손절하는 쪽으로 하고 있다. 손절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나아지려는 의지조차 없는 사람을 견디며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며 서로에게 못할 짓이다. 그냥 조용히 손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오늘도 결국 한 명을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덕질판에서 같은 장르 그것도 같은 최애를 잡고 있는 분을 함부로 써는건 안 하자 주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몇 번을 말해도 자기는 의사에게 솔직하게 말해봤자 소용없을거라며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시니 기껏해야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으세요 하는 말을 하는게 전부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몇 번을 말해본 결과 말은 통하지 않는데 나는 그 분의 말로 스트레스를 받고 가면 갈수록 그게 심해져서 손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팔로워 정리를 한다고 올려놓고 그 분을 블락했다.
정리를 하고 난 뒤에도 내가 잘한걸까, 이게 최선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으며 이게 최선이기에 마음정리를 금방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쩔 수 없다. 정말로 어쩔 수 없다. 스스로를 돕지 않으면 나도 도울 수 없다고 했다고, 스스로를 돕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유능한 전문가를 붙여주어도 소용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