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Jan 15. 2024

내가 사는게 사는게 아냐

하지만 책임져야 하는 개와 고양이가 있으니까


 연미사 봉헌 예물을 내고 왔다. 본당이 명동이니 명동으로 갈까 했지만 경기도에서 명동까지 두 번이나 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에 집 근처 성당 몇 개를 추려서 리스트를 만들고 랜덤으로 하나를 고른 뒤 그 곳으로 미사 예물을 냈다. 연미사이니 고인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한참동안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15분 정도를 질질 끌다 어렵게 그 이름을 적어냈지만 여전히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그것도 연미사 봉헌에 적어넣기를 어려워하고 있다.


 10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했던가. 그 10년 사이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타의로 블랙기업에 끌려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 이런저런 정신질환을 얻었다. 무려 7년이나 병원을 왔다갔다하고 중간중간 응급실과 폐쇄병동을 다니면서 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외면하며 애써 회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탈개신교를 항상 꿈꾸다가 오랜 기간 부모님과 싸워서 종교의 자유를 따냈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지만 잡다한 병증들은 어느정도 잡혀서 양극성장애와 약간의 공황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로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반대로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10년 전 1월 27일 갑작스럽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 아이에 대한 내 기억이다.


 애초에 기억이라는 것은 쉽사리 바뀌는 것이 아니지만 모두가 잊고서 현재를 살아가는데 나만 인생시계가 멈춘 기분이다. 이제는 이게 단순히 배터리 교체와 같은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철저히 망가지고 박살나서 수습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최대한 전자 쪽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근래 들어서 전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희망사항이자 착각이고 현실은 후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고 해서 쉽지 않음에도 그렇게 했는데 나만 더 아프고 힘들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이틀 밤새고 이틀 몰아자는 이 말도 안 되는 생활은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대체 왜 이러는지.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다 해결이 된다고 하면 그건 마술적 사고이니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진짜 시간이 약이긴 한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뭐랄까 이제는 죽고 싶은 것은 아닌데 그냥 잠만 쭉 자고 싶다.


 병원... 가야지. 갔다와서 또 현재를 버텨야지. 나한테는 책임져야 하는 개와 고양이가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한 말씀만 하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