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친 나의 이름표 찾아가기
근래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30대가 되어서 찾은 나의 이름표는 논바이너리(에이젠더)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이다.
논바이너리와 에이섹슈얼은 나에게 너무나 확실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표다. 어렸을 때부터 죽어라 치마를 거부했고 중학생이 되며 치마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울고 생리를 한다는 사실에 죽고 싶어했으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상상을 해대도 섹슈얼한 것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나에 대해 깊이 절망했던 적이 있기에 나 자신이 논바이너리에 에이섹슈얼이라는 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로맨틱은 다르다. 내가 에이로맨틱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는 일반적인 바이로맨틱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히 누군가의 로맨틱 일화를 들을 때 그것을 많이 느끼곤 한다. 나는 여전히 이전에 청년피정에서 강의 중 하나의 주제가 '연애와 결혼'이었는데 왜 그 강사가 자신의 남편이 카톡으로 수박 사진을 보내면서 '사갈까?'라고 보내면 자신은 그걸 받고 이래서 결혼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게 대체 어디가 로맨틱한 것이며, 나는 이런 대화를 트친들과도 얼마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트친들과 로맨틱한 관계를 쌓아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정말 일반적인 바이로맨틱일까 하는 의구심만 잔뜩 쌓아왔다.
분명 나도 내 인생의 그리고 신앙의 동반자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지정성별로는 동성이라-젠더로는 이성이지만- 현재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법적으로 묶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를 정말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다. 함께 덕질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살고 싶다. 어쨋든 내가 죽으면 장례미사에 이 친구가 있어줄 것이기에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인연이다. 섹슈얼하거나 로맨틱한 연인 관계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 이상 연인 미만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어쨋든 지금도 그런 관계이긴 하지만. 너무 복잡한가? 아무튼 그렇다.
이런 과정을 거쳐오다보니 나는 분명 바이로맨틱이긴 하지만 그 바이로맨틱이 그냥 평범한 바이로맨틱은 아니고 회색지대에 있는 그레이바이로맨틱이지 않나 싶다.
정말이지 정체화라는건 뭘까. 누군가는 이에 대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이름표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했는데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우면서 지난한 과정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