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는 뼛속까지 확신의 에이젠더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콰로맨틱이다. 여기서 에이섹슈얼은 흔히 아는 무성애를 뜻하고 콰로맨틱은 조금 복잡한데, 에이로맨틱(무로맨틱)의 한 종류인데 플라토닉 끌림과 로맨틱 끌림을 구분하기 어려워하고 로맨틱 끌림과 관능적 끌림을 구분하기 어려워하거나 자신이 로맨틱 끌림을 경험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워하는(?) 그런 정체성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연애? 결혼? 그런 선택지가 사실상 해당사항부터 없다. 애초에 확신의 무성애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혼도 동성혼도 나와 맞지 않다는 느낌 뿐이다. 알 수 없지만 어쨋든 내 것은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생활 동반자'는 원했다. 나와 결이 비슷하거나 맞는 사람들과 대안 가족을 이루고 꼭 생계와 주거를 같이 하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함께 놀기도 하고 덕질도 하고 같이 성당도 다니면서 사는 삶을 바랐다. 그래서 내 꿈 중의 하나가 같은 퀴어 가톨릭 신자끼리 한 건물, 하다못해 한 동네에 모여 사는 것이다.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 신앙도, 나의 성별 정체성도 성적 지향도 부정하는 부모님과 원가족을 피해 어떻게든 내 세계를 꾸리며 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비록 생계와 주거를 함께 하지는 않지만 공식적으로 '생활 동반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이 친구는 나에게 정말 여러 의미로 각별한 친구인데, 나를 지금 덕질의 세계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성당을 다니도록 유도한(?) 친구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가깝게 지내고 있었고 sns에서 수시로 온갖 덕질 얘기를 주고받았으며 카톡으로는 전화로는 신앙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친구다.
혹여 이 친구가 부담감을 느낄까봐 내가 말을 꼭 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실제로 이 친구는 확신의 에이로맨틱이라 혹시나 이 친구가 이걸 로맨틱적인 해석을 할까봐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소중하고 완전 찐친이기에 너가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괜찮다, 내가 너를 다른 누구에게 소개할 때 너에 대해 생활동반자라고 해도 되겠냐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기꺼이 승낙했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대안 가족을 이루었다.
원래 나는 이 친구를 만나러 분기별로 충남에 내려가곤 했다. 그 곳에 가서 친구랑 미사도 드리고 성지순례도 하고 친구집에 가서 친구 부모님이랑 밥도 먹고 했는데 이제는 좀 더 자주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돌아오는 이번 일요일에는 내 견진대녀가 될 동료 활동가와 함께 친구가 사는 동네를 찾아가기로 했고.
아무튼 정말 좋다. 이렇게 해서 또다른 가족이 생길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비록 국가가 우리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뭐 어떤가. 그리고 애초부터 우리는 종교적으로 서류상 얽힌 사이다. 이 친구는 바로 내 대모이기 때문이다. 이정도만 해도 우리는 이미 기묘한 가족 관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