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이게 결코 내가 꿈꾸던 삶은 아니다. 정말 순전히 어쩌다보니 삶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고 우연과 타이밍 그리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숙명이 나를 활동가로 만든 것이지 내가 원하던 삶은 사실 아니다.
나는 사실 활동가와 거리가 먼 성향이다. 그래서 내가 30대에 접어들어서 활동가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거리에 나서는 것을 잘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나 역시 인간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혐오할 정도로 인간을 싫어하는 내가 활동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물론 활동가라고 해서 다 인간을 좋아하고 인류애가 넘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딱 이전에 내 소속 단체에서 문제가 크게 터졌다. 당시 나는 여성 가톨릭 퀴어 어쩌고 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 곳 모임장이 나에게 퀴혐을 했고-그 인간의 퀴혐 이력?은 나도 몰랐던 것인데 참으로 다양했다. 트젠혐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바이혐까지... 지 배우자가 바이인데 그러고 싶은지 싶다- 그 외에 몇 가지 나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개인 문제를 가지고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며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정신건강에 큰 타격을 입고 한남대교에 죽으러 갔다가 내려와서 강동성심병원 정신과 개방병동에 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나는 관련 톡방도 나오고 오카 프로필도 싹 다 터트린 뒤 그 단체 카페도 탈퇴했지만 이미 받은 상처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인간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었고 명색에 퀴어 단체이면서 퀴혐을 한 그 곳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손을 내민 곳이 바로 현재 내가 소속된 가톨릭 앨라이 어쩌고 하는 단체다. 이전부터 그 곳의 미사를 꾸준히 갔기에 그 곳 사람들과도 어느정도 구면이었고 무엇보다 그 곳 대표에게 내가 나는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게 뭐 어때서요? 저도 정신과 다녔어요 별 거 없던데요?"라고 얘기해줘서 마음이 편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그 곳 소속의 활동가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현재 운영위원 공석이 있는데 그 자리에 나를 추천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이게 그렇게 된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여기에 응답하는 것이 과연 맞을?'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래서 한참이고 성경을 뒤적이다가 방 한 켠에 걸려 있는 벽고상을 가만히 쳐다보다가를 반복했다. 하느님 제가 당신의 부르심에 감히 응답하는 것이 맞을까요? 제가 정말 좋은, 바람직한 퀴어 인권 활동가가 될 수 있을까요? 몇 번이고 이렇게 묻기를 반복하다가 나는 사무엘상 3장 10절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사제 수도자 뿐만 아니라 활동가 역시 성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진짜 나에게 성소가 있고 내가 부르심을 받은 것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했고 최종적으로 그 단체 대표에게 운영위원에 들어오겠냐는 물음에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 일이 있고 대략 보름 정도 지나서 톡방에 초대되었고 그게 어느덧 지금 기준으로 대략 1년 전 일이다.
사실 지금 이 단체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는 나름 활동가라는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퀴어의 삶을 조명하며 그 중에서 가톨릭을 믿는 성당 퀴어 가시화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 이것 역시 활동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없잖아 있어왔다.
그리고 소속 단체가 있는 삶을 살아보니 확실히 소속 단체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넘어지거나 뒤쳐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보폭을 맞추고 기다려주고 함께 팀을 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이래서 소속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 나에게 동료 활동가들은 일종의 유사 생활동반자와도 같다. 아무래도 팀을 꾸려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다보니 그만큼 자주 보게 되기도 하고 대화도 많이 하게 되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 활동가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하면 일단 말린다. 활동가로서 사는건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이다. 내가 활동가라는 이유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공격을 당할 때도 있고 나랑 관련이 없음에도 그저 내가 활동가라는 이유로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리기도 하며 무엇보다 좋지 못한 꼬라지를 많이 보다보니 정신건강에 안 좋을 때도 많다. 금전적인 보상은 참으로 별로인데 내가 겪는 스트레스는 그에 비해 어마어마하다보니 나는 누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하면 우선 말리고 본다.
하지만 나는 활동가를 그만두지 않을거다. 적어도 그런 이유로 때려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 단체가 덩치 큰 단체가 되어 상근자를 두어야 할 경우 (아마도) 나는 상근자 지원을 하지 않을까 싶다. 활동가 말고 할 줄 아는 것도 딱히 이제는 없기도 하고 분명 쉽지 않지만 이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성소임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