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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개미 Oct 09. 2024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만난 지 6개월 차, 동거 시작

주말에는 V의 집에서 지내고 평일에는 나의 방에서 지내기를 반복하다가, 자연스럽게 평일에도 V의 집에 머무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도 그렇듯 V도 타인이 내 공간에 오래 머무는 게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8월 첫 주, V가 친구들과 체코로 일주일 휴가를 다녀왔을 때 고양이 모죠를 돌봐주며 V의 집에 길게 머물렀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요리하는 것도 불편하고 화장실 쓰는 것도 어쩐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편해졌다.


10월의 끝으로 내가 머무는 방 계약이 끝나 고민이 커졌을 때 V에게도 털어놓았다. 베를린에서 방을 새로 구해야 하는데 언제 독일어 자격증을 딸지 아직 불명확하고 어느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갈지 모르겠어서 어떻게 방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연애 초반 V는 이전 연애에서도 동거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며 못을 박은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동거를 원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왜지? 하며 의아했었는데 독일에서는 연인사이의 동거가 보편적이라 그런거였다. 동거를 통해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도 하고 집세도 아낄 수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결혼 전 동거가 부정적인 인식인 반면 독일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되고 독립하면 부모가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동거를 하게 되면 단칼에 헤어지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기도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V가 혼자 계속 살고 싶어했던 이유는 혼자 있어야 비로소 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고 매일 같이 있지 않아 사이가 좋았던 점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방을 새로 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생기자 V가 고민해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 너와 있으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함께 있어도 진짜 쉬게 되고 잠도 더 잘 자게 돼.


같이 살자고 제안해 준 게 고마웠지만 나는 한국에서 스무 살 초반 룸메이트와 마찰을 빚었던 기억이 있어 처음에는 망설여졌다. 그래서 동거 중인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패드에 동거의 장점과 단점을 여러가지 적어보기도 했다.

내가 결국 V와 같이 살게 V를 믿어서이기도 하지만 안전 문제도 컸다. 그때 지내고 있던 방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있었고 여성으로 혼자 산다는 것은 타국에서도 쉬운 일이 아님을 체감하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고양이 모죠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이기도 했다.






같이 살게 되니 예상대로 몇 달은 생활패턴이 너무 달라 애를 먹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고 V는 저녁형 인간이라 기상시간도 달랐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꽤 있었다. V가 늦게 일어나면 저녁 먹는 시간도 늦어지게 되는데 나는 일찍 자고 어학원에 가야하니 문제였다. 이런 생활패턴이 자리잡기까지 힘들었는데, V가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직장에 다니게 되자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우리의 식습관도 점점 비슷해져갔다. V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지만 불닭볶음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겨울에 김치를 직접 담가 V의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리사로 일하는 V가 대부분 요리를 담당하고, 나는 주로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서로의 진솔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살기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금쪽이 같을 때도 있지만 그건 나도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 


지금은 내가 타 도시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어 떨어져 지내는 중이다. 우리는 다시 같이 살게 될 날을 위해 서로의 자리에서 잘 지내보기로 했다. 주말에 V의 집에 가면 맛있는 요리를 먹고 같이 드라마를 본다. 가끔 밖에 나가서 데이트할 때도 있고 집에서 그냥 늘어져 있을 때도 있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상대에 따라 정말 다르고 또 시작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처럼, 서로를 알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것도 많다. 그렇기에 서로를 더 존중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소중히 하자,라고 종종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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