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개미 Sep 11. 2024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쯤?

확신이 들 때 나오는 말

나는 이전 연애에서 '사랑해' 말로 받은 설렘이 없다. 전 남자친구는 사귀기로 한 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사귀자마자 튀어나오는 그 말이 어딘가.. 정말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두 해가 지날동안 그의 진심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분명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그의 표정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건 나를 등한시하는 태도와 귀찮음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나 데이트하며 피곤해했고, 내 진심을 전달했을 때에도 바쁘다는 말로 회피하기 일쑤였으니까.


이렇게 이전 연애에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져서인지 V와 연애 초반 설렘을 느끼면서도 큰 기대는 이미 버렸었다. 너 과연 날 사랑하긴 해?라는 의심조차 가지지 않고, 일단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사랑해'라는 말을 정말 본인이 사랑을 느낄 때 주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을 사귀었어도 한 번도 듣지 못하다가 확신이 생길 때 듣기도 하고, 1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물론 연인마다 그 기간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V와 만난 지 바로 초반에는 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대체했으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것부터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훨씬 중요했다. 이번엔 성급하게 집을 대충 지어놓고 수리하는데 온 신경을 쓰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상대를 파악하고 솔직한 진심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V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내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현재로서는 결혼에 관심 없으며, 내 인생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을 포함했다. 또, 과거 이야기를 꺼내면서 연인 사이에서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과거 연애를 통해 신뢰가 깨져버리는 경험을 둘 다 한 터라, 믿음을 소중히 하고 우선적인 가치로 두는 데 동의했다.



아기 고양이 모죠

나랑 함께한 지 두 달이 넘은 시점, V는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다. 한국에서 강아지와 살아왔지만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이 소중한 생명체가 너무 신기했다. 이 고양이에게 느끼는 사랑은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더 커져갔고, V에 대한 감정 또한 그랬다. 어느 나른한 일요일 밤,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와 V를 보고 나는 사랑을 확신했다. 딸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가져온 딸기를 먹으며. 아마 그때쯤 V도 비슷한 사랑을 느꼈고, 우리는 그때부터 '사랑해'라는 표현을 주고받게 되었다.


"Ich liebe dich." 사랑해

"Ich dich auch." 나도


사랑한다는 말까지 6개월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에서 오는 깨달음이자 확신이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기 때문에 싸워도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서로의 생각이 비슷하고, 사랑의 속도가 비슷한 데서 오는 통함이 있었다. 이 과정을 겪어보니 관계에 있어서 가벼움과 무거움 또한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진심을 표현하고 배려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해 보기로 했다.





이전 05화 한국과 다른 독일의 연애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