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보내는 시간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서 한동안은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어색했다. 한국에서 데이트할 때는 '레스토랑-카페-영화관'의 정석 루트대로 시간을 보냈었다. 여기서는 남자친구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날씨가 좋지 않거나 에너지가 없을 때는 주로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점부터 새로웠다. 꼭 만나야만 하고, 어딜 굳이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더 자유로웠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같이 갔고,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같이 보았다. 남자친구 친구들이 바베큐를 제안하거나 호수에 가자고 하면 그 요청에 응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남자친구 친구들을 만나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중에 친해진 친구도 있고 훨씬 편해졌다.
근교로 차를 빌려 여행을 떠나고 숙박을 해야 자연으로 갈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곳곳에서 자연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도 너무 덥거나 춥지 않으면 우리는 가방에 수건과 수영복을 챙겨 근처 호수로 간다. 슈프레 강에 누워서 일몰을 보거나, 공원에서 친구들과 다같이 모여 피크닉과 바베큐도 가능하다. 나는 수영을 못하는 것이 아직까지 아쉬워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수영을 배워보려고 한다.
또, 자기 의견을 확실하게 말하고 니것, 내것을 확연하게 구별하는 독일인들은 더치페이하는 걸로도 유명하고 다같이 음식을 나눠 먹지도 않는다. 진리의 사바사(사람에 따라 다른)겠지만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정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만 좋은 점은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인데, 어릴 때부터 좋은 게 좋은 거지~ 마음으로 살아왔던 나는 초반에 이것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연락에 대한 문제도 서로 맞춰나가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선 보통 끊임없이 톡을 주고받고 몇 시간 연락이 안 되면 근심에 휩싸이는 경우도 많은데, 독일에서는 각자 보내는 시간을 존중하고 서로가 궁금하거나 필요할 때 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특히 한국처럼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 처음엔 나 또한 나한테 관심이 많이 없나?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연락을 적게 한다고 해서 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떨어져 있을 땐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만나서는 즐거운 시간을 쌓아갈 수 있었다.
거리에서의 스킨십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유럽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커플이 키스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개념이 우리나라와는 반대되는 것 같다. 한국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라는 개념이 중요한 데 반해 독일은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많고, 그걸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남의눈을 피해 숨어서 스킨십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건강한 사회로 보이기도 했다.
동거에 대한 인식도 나쁘지 않고, 사귀는 사이라면 연인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도 자연스럽다. 우리나라처럼 '결혼'에 대한 강박보다는 상대를 알아가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화이다. 그렇기에 나도 오히려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오히려 깊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남자친구 주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 마음의 선을 지우게 되거나, 나의 주관을 다시 되돌아보고 쌓는 과정을 겪게 되었으니까.
독일에는 이런 연애문화가 있지만, 결국 한 사람과 연애한다는 건 문화적 배경으로만 일반화할 수 없다. 독일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는 걸로 유명하지만 V는 약속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우리는 음식도 같이 나눠먹고 만족한다. 결국 서로의 문화나 개인적인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처음엔 낯설어 회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잘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려고 노력한다.
아... 그래서 저녁엔 뭐 먹지? 비빔밥 먹고 싶다고 먼저 말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