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데이팅앱으로 만난 사람들
데이팅앱?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데이팅앱을 다운받고 여러 블로그에서 사용 후기를 정독했다. 대표적인 데이팅앱 세 가지로는 틴더, 범블, 힌지가 있다. 틴더가 제일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분위기였고, 범블은 매칭되면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야 대화가 이어지는 구조, 그리고 힌지는 프로필을 길게 적어야 하는 특징으로 구분됐다. 나도 이 세 앱을 다운받았지만 처음에는 진지하게 임하고 싶지 않았기에(데이팅앱으로 남자친구를 만날 거라곤 상상해보지 않았다) 결국 프로필을 길게 적지도 않고 내가 굳이 먼저 말 걸지 않아도 되는 틴더를 주로 쓰게 되었다.
나의 심리는
궁금증 80% +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한가 확인용 15% + 잘생긴 사람 구경하기(궁금증에 포함이지만 어쨌든) 5% 정도였던 것 같다.
데이팅앱은 유료결제 혜택도 있지만 이미 무료로도 충분했다. 사실 틴더를 100퍼센트 활용하지도 않았는데, 프로필도 귀찮아서 대충 쓰고 틴더를 위해 셀카를 찍기도 싫어서 그냥 평소에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올려두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때 프로필을 대충 써두어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틴더라는 어플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처음엔 아무도 안 만날 생각으로 매칭되면 독일어로 얘기하는 독일어 연습용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둑어둑한 베를린의 3월 초, 그만 너무 심심하여… 영어로 대화도 해볼 겸 손해 볼 게 있나? 하는 생각으로 매칭된 사람과의 만남에 나가보게 되었다.
아래와 같이 순서대로 여섯 번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인스턴트 만남에 피곤해져 미래의 남자친구가 마음에 든 이후로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독일 사람 1/ 하지만 만남 이후 아무 재미도 느끼지 못했고, 그 사람도 그랬던 것 같다. 연락이 더는 오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브라질 사람/ 두 번째 만남까진 이어졌고 나와 음악취향도 비슷했는데, 페미니즘에 부합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별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끝을 냈다.
이집트 사람/ 그는 문자로는 진지해 보였지만, 막상 만나니 나한테 거짓말한 요소들이 보였고(키..) 전혀 진지하지 않았던 사람인 게 들통나 좋지 않게 끝났다. 문자로는 내가 의미부여를 많이 했던 사람.
독일 사람 2/ 나에게 틴더를 왜 쓰냐고 물어서 일단 두고 보려고 한다고 답을 했더니 갑자기 나에게 스킨십을 시도했다.(스킨십을 시도했을 뿐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기겁했다.) 헤어지기 전에 햄버거를 먹자더니 '각자 계산'을 했고 제일 시간 아까운 사람이었다.
V / 미래의 남자친구 V. 제일 영어가 통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같이 있는 게 즐거웠다.
터키 사람/ 대화가 건설적이고 무척 예의 있었지만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촉이 와서 두 번째 만남을 내가 거절했다.
적절한 이니셜이 떠오르지 않아 국적으로 나타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틴더에는 특히 원나잇 스탠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만나야 한다.
신중하게 안전한 사람 골랐다고 생각했는데도, 만나서 얘기해 보니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어찌 됐건 처음 보는 사람과 데이트한다는 것 자체가 여자한텐 위험이고 부담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틴더에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고 써서 만났더니 제일 안 진지한 인간도 있었으니, 프로필 너무 믿지 말자.
재미있었지만, 메뉴판 보고 고르는 식의 인스턴트 대화와 만남에 오래 이용하지는 않았다.
내가 느낀 바와 팁을 쓰자면 아래와 같다.
1. 문자는 하루이틀정도 하고 만나볼 것
2. 그렇다고 너무 빨리 만나지는 말 것
3. What are you looking for?이라는 질문을 미리 해볼 것
4. 문자로도 싸하면 싸한 거
5. 만나기 전에 혼자 문자 의미부여하지말기…
6. 프로필과 실제는 다를 확률이 정말 높다!
7. 사실 틴더는 한국과 같은 용도였다. (원나잇 스탠드가 대다수)
8. 옐로피버 조심 (아시아 문화나, 일본애니메이션, 케이팝에 미쳐있거나, 한국어로 말 걸면 조심)
9. 정말 릴레이션십 원한다면 썸단계 빨리 종료하고 속마음을 전달하는 게 중요
10. 너무 진지하게 나와 맞는 사람 찾지 말기 (기대 금지)
11. 처음부터 집 초대하는 사람은 일단 거절하고 밖에서 보자고 하자 (안전이 제일 중요)
특이했던 건, 사람들의 틴더 프로필을 봤을 때 '오픈릴레이션십'인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는 거다. 나는 연인이 있는데도 만남을 추구하는 이 개념이 생소했고, 한번도 매칭된 적은 없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한번 다루어보려고 한다. 베를린은 오픈릴레이션십이 흔한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아는 사람 중에서도 오픈릴레이션십을 진행 중인 커플이 있다. 이들은 동의하고, 틴더를 자주 이용하는데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인 것처럼 보였다.
구속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며, 솔직하게 협의하기
이것을 추구한다면 오픈릴레이션십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론과 달리 상대를 상처 주는 경우도 많고, 다자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와는 달리 오픈릴레이션십은 중심축이 되는 연인관계가 있고 각자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경우에 따라 바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등, 너무 부작용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사랑의 여러 형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베를린에서 데이팅앱을 사용하며 얻은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