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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개미 Aug 28. 2024

베를린 4개월 차, 연애할 준비 완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서야 깨달은 마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다니,
연애해도 될까?


독일 대학에 학사로 입학하려면 독일어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과정을 오래전 끝마쳤지만, 전공을 바꾸고 싶었기에 석사로 진학하는 것은 무리였다. 주로 영어로 진행하는 독일의 석사 과정과는 달리, 학사는 보통 독일어로 진행되기에 독일어부터 배워야 했다. 

대부분의 대학은 독일어 C1레벨을 요구한다. (나는 이때만 해도 당연히 주어진 2년 안에 C1 어학자격증을 따고도 남을 줄 알았다.) 우선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B1 단계까지 듣고, 독일 베를린에 도착해 A2부터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독일은 한국보다 겨울의 해가 짧았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일상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보기도 하고, 전시회에 다녀오고, 근교 드레스덴 당일치기도 해보고, 클럽도 처음 가보고, 베를린 영화제에서 평소 좋아하던 배우를 만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즐겁고 신나는 일상이었다. 독일어 공부도 진전되고 있었다.


어학원에서는 대만친구와 친해지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았다. 다들 쉬는 시간 조용히 자리만 지키며 핸드폰만 보던 초반 분위기와는 달리, 활달한 친구가 들어오고 나서 같은 반 다른 친구들도 마음을 열어갔다. 그중 무뚝뚝해 보이던 스페인 친구는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캘리포니아에서 온 친구는 칭찬을 잘하는 배려심 깊은 친구였다.




쉬는 시간에는 모두가 편한 영어로 잡담을 나누었다. 그중 잘 끼지 못하고 조용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영어를 필수로 배우지 않는 나라에서 와서 영어가 어려웠던 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친구와 어색했는데, 수업에서 강제로 옆자리 사람과 묶여 말하게 되며 조금씩 말을 텄다.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는 다들 독일어로 더듬더듬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때의 독일어 실력이란..)


그러다 수업이 끝나고 지하철에서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나랑 두 정거장 떨어진 같은 동네에 살았다.

- 왜 이때까지 몰랐지? 너 왜 얘기를 안 했어!

반가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학원 끝나고 동네에서 만나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친구는 평일엔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서 시간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일요일에는 만날 수 있어.

다음 날부터 학원 갈 때면, 그 친구가 나에게 우반에서 만나서 가자고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같이 어학원에 등교하게 되었다.


나는 며칠 뒤에 그 친구가 아침에 전화를 하지 않아 실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 얘 좋아하네... X 됐다.


학원 마치고 카페에 혼자 앉아 일기를 쓰며 얼굴이 새빨개졌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약속대로 우리는 그 친구가 쉬는 날인 일요일에 한번 만났다. 동네에 있는 큰 언덕을 함께 올라가 그 위에서 베를린의 야경을 함께 보았다. 나는 그 친구가 좋아서 나름대로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그 친구는 단지 친구로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아니면 우리는 둘 다 잠시 외로웠겠지.

같이 본 베를린의 야경




어느 날, 어학원에서 '독일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어플'을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던 중, 그 친구가 괜찮은 공부 어플이 있다고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줬다. 그런데 독일어 앱 옆에 당당히 있는 '틴더' 앱 발견.

뭐지? 얘가 틴더를 쓴다고?

상상이 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소개팅과 어플 이용을 해 본 적 없고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반면,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어플을 통해 연인이나 친구를 잘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 친구의 핸드폰에 깔린 틴더 어플을 보고 나서 나는 마음을 접을 수 있었고, 공교롭게도 앞으로 다가올 인연을 틴더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이 친구를 좋아한다는 일기와 연애에 대한 마음가짐을 주제로 블로그에 글을 적었었다. 내 친구들은 이 친구가 누구냐고 무척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가 나와 거리 두는 행동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고, 결국 마음을 접은 과정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해프닝은 일찍 마무리되었다.

블로그를 쓰며 오래전 전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도 이제의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봐도 괜찮은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나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될 게 뭐야. 나도 한번 데이팅앱 써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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