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애는 5년 전,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
혼자 있는 게 이렇게 편한데,
연애를 왜 해야 해?
엄마가 연애사업을 물어보면 내 대답은 이랬다.
- 혼자가 이렇게 편한데, 굳이?
그렇다고 연애를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었다. 7년 전, 여행지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고, 다른 커플과 비슷하게 싸우고, 식어가는 사랑에 불을 지펴보려다 실패해 이별을 맞이했다.
그 이후엔 친구들과의 만남이 내겐 더 소중했기에 혼자만의 공간을 열심히 꾸려갔다.
여가시간엔 주로 집에서 힐링시간을 보냈다. 나의 취미는 주로 집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가꾸었고, 바이닐(LP)을 수집했으며 방에 앉아 조용히 나만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하는 걸 즐겼다.
록음악을 좋아해 가끔씩은 돈을 모아 공연에 갔다.
평소엔 넷플릭스 등의 OTT로 해외드라마와 영화도 꾸준히 보고, 책을 업으로 삼아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의 감상을 나눴다.
친구들도 나와 비슷했다. 연애 중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연애 자체에 거의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서로의 관심사 위주로 돌아갔다. 물론, 일터에서의 힘든 일상과 푸념도 대화의 주요 소재였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는 건 더 큰 무엇이었다.
직업을 한 번 바꾸고 나는 점점 더 바빠졌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것마저 힘에 부치는데, 연애는 내게 너무 머나먼 세상이었다.
연애란, 내 일상을 살아가고 지키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것.
감정소모가 더는 있어서 안 되기에. 내가 당장 살아가는 현실이 더 중요하니까. 뉴스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빈도가 늘어나는 이유도 연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데 한몫을 했다.
짝을 찾은 친구들을 보면 흐뭇했지만 '나도 내 짝을 찾았으면...'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뭐 없으면 어때?
완전히 비혼/비연애주의자는 아니었음에도 언제나 나는 회의적인 쪽에 가까웠다. 이전 연애의 실패로 학을 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별로 남자에 미쳐사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시간에 넷플릭스 한 편을 더 봐야지..)
안정적인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뒤로하고 독일로 온 이유는 이렇다. 나는 워라밸이 없는 현실에 너무 괴로웠으니까. 결국 택한 건 면직이었다. 이 직업이 내 정신마저 갉아먹을 때 그만두었다.
직업은 꿈이 될 수 없고, 단지 나를 구성하는 항목 중 하나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나니 여러 갈래가 보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유학을 준비하러 온 거였다. 오자마자 코로나에 걸려 호되게 앓았으며, 며칠 뒤 어학원에서 20대 초반 친구들과 초급 단계(A2)의 독일어 수업을 듣는 것부터 내 일상은 다르게 이어졌다.
환경이 바뀌니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베를린이라는 자유로운 도시가 내 생각을 느슨하게 만든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꼭 '의미'에만 가치를 두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매일매일 나아지려고 버둥거리기보단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스텝을 천천히 밟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어학원에서 친해진 한 어린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때까지 관심 없던 '연애'를 다시 시작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점차 끓어올랐다.
열심히 배우고 있던 독일어가 조금씩 뒷전으로 밀리던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