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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l 17. 2018

언제까지 숨기실 건가요?

환자에게 암 진단을 숨기는 가족들 

"저... 설명들을 때 환자가 꼭 있어야 하나요? "

환자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환자분은 어디 계시지요?" 

뒤따라서 수척한 얼굴의 남자분이 들어옵니다. 60대 후반. 사실은 나이가 좀 더 들어보입니다. 약간 얼떨떨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입니다. 이 방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이지요. 

"어디가 제일 불편하신가요?"

외래 간호사가 요약해준 병력을 훑어보며, 그리고 곧이어 다른 병원에서 검사하신 영상이 띄워진 모니터로 눈을 옮기며 재빠르게 묻습니다. 간과 림프절 전이가 제법 큽니다. 결장이 유난히 두껍고 부어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시경으로 한 조직검사에서는  Adenocarcinoma, 선암으로 확진되었습니다. 

최근 울렁거려서 제대로 못먹고 살이 빠졌고 기운이 없다고 하십니다. 대변도 시원하게 안나옵니다. 사실 더 자세하게 물어봐야 하지만 웬만한 검사는 하고 왔기 때문에 초진 한 사람당 주어진 약 10분을 알차게 쓰기 위해 여기까지만 여쭙기로 합니다. 아마 이 정도면 침상에 눕히고 상복부를 만져보면 간을 차지하고 있는 종괴가 딱딱하게 만져지겠지만 검사를 다 하고 왔으므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이 검사를 한 결과를 누군가는 들었을 것이고 그러니 환자는 이 큰 병원까지 오시게 되었겠지요. 환자가 들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분은 좀더 두렵고 절망에 찬 눈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아직은 혼란스러우신 듯합니다. 그리고 저 딸의 태도. 아마도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병명을 숨기고 있을 것입니다. 


"이전 병원에서 한 검사 결과에 대해 좀 들으셨나요?"

"아니요 난 못들었지.... 애들이 들은 것 같은데...."

따님이 다급하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그냥 설명들을께. 나가 있을래?"

"환자분 제가 검사해오신 것 본 것을 가족들에게 대신 말씀드릴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

"아니면 본인이 들으시겠어요?"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체념한 듯, 또는 각오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자마자,

저는 기다렸다는듯이 시작합니다. 이 때는 환자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약간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밖에는 이미 20분 정도 지연되어서 다른 분이 기다리고 있지요. 너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주의하면서 말합니다. 환자분에겐 인생에 가장 큰 비극이지만 저에겐 일상인 일이고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가장 슬픈 일을 가장 잘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슬픈 일인만큼 잘 해야 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전에 하신 대장내시경 사진 보이시지요? 울퉁불퉁하고 부어있어요. 이것때문에 변을 보기가 힘드셨던 것 같아요. 다행히 꽉 막혀있지는 않고 그래도 안쪽에 공간이 좀 보입니다. 힘들어도 변을 보실 수는 있는 정도이시구요. 심하면 막혀서 더 힘드신 경우도 가끔 있으시거든요. 여기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종양이 나왔어요. (처음부터 '암'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지 않는 것은 의사소통기술의 족보입니다. 약간 '종양'같은 충격이 덜한 단어로 시작해서 한번 정도 '암'이라는 단어로 확진이 되었다는 언급을 하고 그 이후엔 상기시키듯 자꾸 반복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때 환자의 표정을 살필 엄두는 사실, 전문의 12년차의 내공으로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이자 종종 합당하기도 한 이유로 우리는 환자의 얼굴을 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티를 보시면... 간에도 제법 큰 종괴가 있어요. 어깨도 아프시다고 했는데 이걸로 인해서 나타난 증상일 수도 있어요. 간이 아프면 오른쪽 어깨도 같이 아픈 경우도 있거든요. (방사통 radiating pain; 통증이 이를 유발시킨 부위와 거리가 먼 신체부위에 나타나는 것을 그렇게 부릅니다) 아마도 아까 대장 부위에서 암세포가 건너와서 간으로 간 것 같습니다. 대장암이 가장 잘 전이되는 부위가 간인데, (약간 뜸을 들이고) 간으로 전이가 되신 것으로 보입니다."

"....."

환자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부인과 딸이 질문을 쏟아냅니다.  수술할 수 있느냐.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느냐. 치료가 힘드냐. 지금 이렇게 몸이 안좋은데 치료를 견딜수 있느냐. 


"수술보다는 항암치료하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병기가 진행되어 수술은 할 수없다는 말을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이기도 하고요.  병의 상태에 가장 적합한 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장난같다는 느낌도 들기는 해요. 하지만 수술을 할 수 없어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게 나에게 맞는 치료이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물론 다소 힘들고, 약을 충분히 못쓸수도 있는데요. 조금 줄여서 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도 약이 잘 듣고 오히려 몸상태가 항암하고서 좋아지는 분들도 있어요. 꽤 오랫동안 병이 잘 조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결국 항암치료도 내성이 생긴다는 말은 뺍니다. 여기서 그렇게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조금씩...조금씩 준비가 되었을 때 말씀드립니다) 조심스럽게 시도해볼 만은 할 것 같습니다."

"...."

환자분이 말이 없는 것이 맘에 걸립니다. 

"이제까지 검사결과 말씀드렸는데, 궁금한 것이 있으실까요?"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묻고 대답한 후 마무리하는 것은 의과대학수업이나 의사소통워크샵 등에서 '환자와의 면담에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배우면서 대부분  안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궁금한게 있냐고 운을 띄우면, 환자에게 그동안 궁금하고 이해가 안되었던 것 (정말 많을 것입니다!)을 물어볼 용기를 주기 때문에 면담시간이 길어지는데, 3분진료 시스템에서는 치명적인 진료지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환자들에게는 가급적 물어보려고 노력합니다. 한번 정도는,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러나 이 분은 더 묻지 않습니다. 항암치료 스케쥴을 정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가고,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종종걸음으로 따라갑니다. 


사실 저도 걱정이 됩니다. 이 분의 마음에 제가 오늘 일으킨 평지풍파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두려움과 불안, 슬픔과 격정을 쏟아놓는 분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말이 없는 분들이 이젠 더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인생의 진실을 알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혹한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싶지 않은 것 역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진실을 대면시키는 방식이 폭력적이어서 문제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우리의 진료현실에선 그렇게 보일 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살피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견딜 수 있도록, 약간씩 꺼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꺼번에 말하는것보다는 궁금한 것에 답하는 방식으로, 얼마나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 환자에게 병명 또는 예후를 숨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환자가 병의 위중함을 알았을 때 너무 절망할까봐, 그래서 더 몸이 나빠질까봐, 우울에 빠져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을까봐,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등등. 저는 그럴 때면 다시 묻습니다. 당신이 이 상황일 때, 당신의 가족들이 당신에게 숨기기를 원하세요? 대부분은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아니지만 환자는 너무 예민하고 심약한 성격이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몸 상태가 나빠지면 본인이 눈치를 채실텐데요. 노인분들은 사신 만큼 지혜가 있고 상황 파악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 하십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견디고 받아들이시는 분도 많습니다. 본인도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조금씩 견디실 수 있을만큼 말씀드리시지요.' 사실 이쯤 되면 환자가 저와 직접 대화할 시간을 가족들이 빼앗는것이죠. 환자가 직접 자신의 몸과 감정에 대해 의사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족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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