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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20. 2018

환자에 대한 글쓰기에서의 윤리  

그 잔혹성과 관련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직접 환자를 본 의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무참히 훼손된 피해자의 상태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묘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고, 그 잔혹성을 고발하는 의미가 있다는 반론이 있다. 그 글을 쓴 의사는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이다. 나는 이전에도 응급실에서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풍경과 그 속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그려낸 그의 글들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전의 글들은 그의 말에 따르면 실제 환자의 케이스가 아니라 관련된 정보의 상당부분을 바꾸어 각색한 소위 '팩션(faction)'이라고 하는 장르였고, 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그 사건에서 희생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즉 익명화(deidentification)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리적인 논란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계없이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날것의 생생한 묘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익명화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꼭 이루어져야 할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는 반드시 익명화가 되어야 하고, 연구 과정에서도 익명화 된 채 진행해야 하는지는 동의서 획득 여부에 따라 다르다) 윤리적 조건이자, 환자를 대상으로 글을 쓸 때 역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불문율이다. 그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익명화의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특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익명화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의 부끄러운 경험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수 년 전이다. 나는 익명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간간이 진료실에서 겪은 소회들을 적어 올리고 있었고,하루는 너무나 예후가 좋지 않았던 40대 남자 환자를 보며 느끼는 점에 대해 썼다. 병의 상태를 자세히 기술하고 항암치료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나의 마음, 항암치료를 해도 별다른 도움이 안될 것 같다는, 그러나 그것 외에 그  젊은 환자에게 할만한 치료가 없다는 것, 치료에 환자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으나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이야기였다. 이것만 보면 별 문제는 없어보인다. 나는 환자에 대한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이야기한 것이고 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또한 일년에 우리나라에서 전이암을 진단받는 40대 남자 환자는 수만명이 넘을 것이다. 익명성 역시 확보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병이 어디어디 전이가 되었는지, 진단과 상담 과정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자세하게 쓴 그 블로그 글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던 환자의 가족이 보게 되었고, 바로 그 환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환자도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더욱 적나라하게 알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나는 환자와 가족에게 용서를 구했고,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환자와 가족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상태를 잘 알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도 했다. 그리고 효과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마 그 이후엔 다른 대체의학치료를 찾아 나서신 것 같다. 다시 내 외래 진료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겉으로는 비난하지 않았을지라도 환자와 가족의 마음은 나보다 훨씬 훨씬 더 참담했을 것이다. 더 이상 나에게서 의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네이버 블로그을 닫았다.

나는 글에서 환자를 비난하지도, 비웃지도, 험담을 하지도 않았다. 치료가 어려운 암환자의 갑갑한 상황을 묘사하였을 뿐이다. 환자와 가족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글에 등장하는 환자가 바로 그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그의 상태를 불특정다수에게 노출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와 가족이 몰랐고 결국 익명화에 성공(!) 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경우는 환자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확실히 문제가 되었다.  자신의 나쁜 예후에 대한 설명은 우연히 찾은 블로그 글에서 알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직접 들었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알게 한 것은 확실히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에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살인사건의 피해자에게로 돌아가보자. 피해자는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말이 없다. 그러나 유족이 그 글을 볼 때의 심정은 어떨까. 적어도 유족에게서 허락을 받고 써야 정당한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 글은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써서 달성할 사회적 목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게 써서 추구해야 할 미적 가치가 있는가. 둘 다 아니다.

나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요즘 위클리매거진에 올리고 있는 내용은 주로 부모님의 이야기이지만, 간간히 환자 이야기도 나온다.대부분 이미 사망한 환자이고, 상당수는 그 환자의 신원을 나도 잊어버린 경우들이어서 다시 유족을 찾아 허락을 구할 수도 없다. 사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최대한 각색하고 자세한 묘사는 가능하면 제거해서 더 철저히 익명화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앞으로는 가능하다면, 글쓰기의 대상이 된 환자나 가족에게 글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할 작정이다.

환자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해 일일이 사전허락을 받으라는 빡빡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사람들이 극찬하는 올리버색스나 아툴가완디의 글 역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환자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 의사의 글에 자신이 등장한 것에서 상처를 받거나 자율성을 침해당했다고 여긴다면, 그 글은 윤리적이지 않은 것이며, 윤리적이지 않은 문장을 우리는 아름답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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