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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30. 2018

응급실 과밀화 대책 - 잘못 풀린 실타래

응급실 체류 시간이 24시간이 넘는 환자의 비율을 전체 응급실 방문 환자의 5%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정책기조입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이 비율을 줄이기 위해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2015년의 메르스 사태가 있습니다. 응급실 과밀화가 빠른 감염 전파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응급실에 장시간 체류하는 환자를 줄여야 과밀화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건당국은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건의료계의 모든 문제는 서로 얽혀 있고 하나에만 집중한다고 다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급종합병원, 특히 소위  big5라 불리는 병원들에서는 응급실 체류시간을 줄여도 응급실 환자는 줄지 않습니다. 왜냐? 빈 병상에 또 환자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속도만 빨라졌을 따름입니다. 병상회전속도가 빨라지면서 의료진의 피로는 더욱 심해집니다. 진료의 질 하락, 안전사고의 위험은 더 커질까봐 걱정됩니다.


왜 응급실 환자는 늘어날까요? 외래 환자가 늘기 때문입니다. 외래진료를 받던 환자가 응급상황이 생기면 대개는 다니던 병원 응급실로 오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들이야 응급실에 몇 년에 한번 갈까말까이지만, 외래진료를 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자들은 한달에도 몇번씩 응급실 신세를 져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왜 외래 환자는 늘어나나요? 인구는 줄어드는데? 인구는 줄어도 노령화가 진행되면 병원에 오는 횟수, 병원비는 늘 수밖에 없죠.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출하는 진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출한 진료비는 46억원이었으나, 2017년에는 69억원으로 6년만에 1.5배가 되었습니다. (2018.3.21 심평원 보도자료) 물가상승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2011년과 비교하여 건강보험에서 지출한 진료비는 1.5배로 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은 상급종합병원, 그 중에서도  big5라 불리는 병원으로 몰립니다. 이들 병원에서 진료량과 진료비점유율이 증가한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어 온 현상입니다. (아래 표) big5가 상급종합병원 진료비의 약 35-36%, 전체 의료기관진료비의 약 7-8%를 차지하는 것은 200년대 중반 이후 거의 고착화되다시피 하였습니다.  비율은 비슷해보이지만 전체 진료비가 늘고 있으므로 big5의 진료량 팽창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big5 진료비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의 추세를 보면 약 1조 3천억에서 3조 2천억으로 약 2.4배 증가하였습니다.

2018.3.심사평가원 발표자료입니다.



게다가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중환자실 감염사고가 나면서 이제 사람들은 더욱 더 큰 병원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메르스로 한동안 타격을 입었던 삼성서울병원은 이제 거의 회복한 모습입니다.  큰 병원이라면 환자 안전과 관련한 시스템이 더 잘 되어 있을 것이고, 더 훌륭한 의료진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쉽게 할 수 있는 추정이며 일부 맞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질병은 일반 종합병원과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big5로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통제할 수 있는 기전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도 있었던 선택진료비라는 장벽이 올해 1월 1일부터 사라지면서 이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년의 심평원 진료비 통계는 어찌 나올지..  두렵습니다.

http://hankookilbo.com/v/1aefffe9117d4d82b025ceda0b79a724


그러면 big5를 비롯한 상급종합병원에서 보는 외래 환자수를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많은 의사들은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수가 체계에서 병원이 수익을 내려면, 아니 간신히 유지라도 해내려면, 환자를 무조건  많이 받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저는 정책적으로 개입하려면 이 부분에 손을 직접 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수 년간 의료계에서 주장해왔던 것은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고 상급종합병원 쏠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다시피 하였습니다.


다시 응급실문제로 돌아가보면, 사실 현장에서는 대부분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4년전의 어떤 응급의학과 선생님의 의료전문지 칼럼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응급실 과밀화를 줄이려면 외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요. 그런데 외래는 그냥 두고 응급실 체류환자수를 줄이라니,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426

어떤 부작용일까요? 환자가 아파서 병원에 옵니다. 입원해야 하는데 병상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병원을 알아봐준다고 합니다. 다른 병원에 가긴 갔어도 불안합니다. 원래 다니던 병원보다 의사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고. 여러가지로 미덥지 않고. 증상이 빨리 호전되지도 않고.

다시 다니던 병원 응급실에 갑니다. 다시는 다른 병원 안가겠다고 여기서 대기하겠다고 응급실 의료진에게 읍소합니다. 체류시간 제한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 입원대기를 했다가 퇴원하라고 합니다. 퇴원은 했지만 여전히 아픕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응급실에 다시 갑니다......

응급실에 들락날락하던 와중에 겨우겨우 병상이 나서 입원했고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불안하고, 겁이 납니다. 다시 또 그런 일을 겪으면 어쩌나. 그래서 가급적 오래 병실에서 버티기로 합니다. 의료진의 압박에도 울먹이거나 애원하거나 화를 내거나 보호자가 자리를 피하거나 하면서 버팁니다. 그동안 응급실에서는 다시 이런 환자와 마찬가지 처지인 다른 환자가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위의 일은 제 환자들을 포함한 많은 환자들이 이미 겪고 있는 일입니다. 응급실 체류시간 제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응급실에서 병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을 그냥 두어 병원감염의 온상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들을 줄이려면 병실이 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병실에 나게 하려면 외래진료 환자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외래 환자를 줄이려면 저수가 정책을 손봐야 합니다. big5 쏠림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정책을 세워야지 응급실 체류시간만 가지고 병원을 협박하는 방식으로는 부작용만 커질 뿐입니다.


http://medipana.com/news/news_viewer.asp?NewsNum=203916&MainKind=D&NewsKind=5&vCount=12&vKin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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