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뭐 좀 여쭤봐도 괜찮으실지요?”
환자나 보호자가 진료실에서 나가기 전 이렇게 물어보시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물론 저를 배려하여 예의를 차리시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뭇거리면서 물어보는 데에는 약 10초 정도가 더 걸립니다. 그 찰나의 시간도 외래진료실에서는 이상하게도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집니다.
고작 10초 때문에 인색하게 굴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시간 대비 효용을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전혀 필요하지 않고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오히려 더 좋습니다.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 와서는 당연히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환자의 권리이며 저는 대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바쁘죠. 바쁘기 때문에, 이런 예의를 차리시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주시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좀 바보같은 질문이긴 한데, 제가 처음겪는 일이다보니 몰라서 그러거든요.”
'내가 원래 우매한 사람은 아님을 알아달라'는 호소가 느껴집니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답답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미리 본인을 방어할 수 있는 전제를 깔아놓는다고 해도 의사가 질문을 대하는 태도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재밌는 것은, 본인은 바보같은 질문일지도 모른다며 물어보시는 내용이 꽤 날카롭거나 학계에서 논란인 부분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이나 비타민 D를 복용하는 것이 암 재발예방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물론 논란이 있는 부분이라 아직 일반적으로 복용하도록 권고하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질문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저의 최근 논문인 직장암에서의 방사선치료 후 화학요법에 대한 임상시험은, 방사선치료 후 수술 전까지 쉬는 동안 항암제를 계속 먹어도 되느냐는 환자들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www.ncbi.nlm.nih.gov/pubmed/29976501) 방사선치료 후에는 보통 6-8주를 쉰 후 수술을 하게 되지만, 쉬는 기간동안에도 약을 복용할 수 있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항암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암 진행의 위험을 줄일 수도 있고, 방사선치료로 종양을 줄인 데 더해서 조금 더 효과를 높일 수도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모든 일에는 가성비라는게 중요합니다. 부작용이라는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좋아야 실제로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 제가 진행한 임상시험은 방사선치료 후에 항암치료를 추가로 하는 방식이 정말 가성비가 있는 방법인지를 연구한 것입니다.
연구결과는 항암치료를 추가했을 때 종양이 좀더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수술 전 쉬는기간에 항암제를 실제 투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작용이 실제로 많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많은 환자분들이 그 시기에는 방사선치료로 인한 피로로 쉬기를 원했기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연구는 3상연구까지 진행하지는 못하였고, 그래서 아직까지는 방사선 종료 후 쉬는 것이 표준치료입니다. 다만 향후 직장암의 치료는 비수술적 방법으로 항문을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적절한 순서와 조합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 개개인의 종양의 성질에 따라 약제를 달리하여 좀더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질문은 전혀 바보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사에게는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들,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많은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형병원에서 환자 1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5분입니다. 초진은 10분 정도. 이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물어봐야 할 내용을 적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아주 많을텐데, 일단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우선 가장 궁금한 것 1번과 2번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환자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셨다면 의사가 궁금해하는 것도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의사는 당신이 무엇을 가장 불편해하는지를 궁금해합니다. 이것도 1번과 2번을 정하십시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궁금한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대부분의 의사는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말하는 환자를 의사는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물어보세요. 단 미리 준비해서 요점 위주로 질문하시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