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입원해서 수 개월을 병원에서 지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항암제는 2-3주 간격으로 반복하여 투여되는 것이므로, 주사를 맞을 때만 병원에 오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입원해있는 것은 아닙니다. 난소암으로 치료받았던 수신지 작가가 그린 "3그램"에서는 항암주사를 맞을 때마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일상과 병실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항암제는 병실이 아니라 외래주사실에서 투여됩니다. 혈액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이 과정 중간 중간에 긴 대기시간이 있어 하루 종일 병원 안에서 분주하게 이리저리 오가야 합니다. 그래도 이젠 더 이상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진 않아도 되지요. 조셉고든래빗이 주연한 50/50이라는 영화에는 항암주사실에서 앉아서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썩 유쾌한 장면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항암치료를 받는 장면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된 영화 중 하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udpLbRsuM
2000년대 중반부터는 집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방법도 고안되어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대장암, 위암, 췌장암 등 위장관암에서는 50여시간 가까이 주입되는 항암제 정맥주사를 종종 처방하는데, 인퓨전 펌프라는 지속적 약물주입장치가 도입돼 집에서도 항암제 투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이는 진통제나 항생제 투여에도 종종 쓰이는 방법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장치여서 위생적이고 간편합니다.
항암제 하면 떠올리는 부작용인 오심과 구토 또한 입원에 비해 외래치료가 오히려 덜할 수도 있습니다. 항암제 유발 구토에는 환경 및 심리적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수 일간 머무르는 것보다는 익숙한 환경에 있는 편이 구역질을 덜 납니다. 처음엔 어떻게 주사맞고 바로 집으로 가느냐, 어떻게 집에서 주사를 맞느냐고 손사래를 치던 환자들도 '해보니 괜찮더라'면서 점점 적응해갑니다.
입원비가 비싼 외국에서는 이러한 장치를 이용해서 웬만한 주사치료는 대부분 외래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명 병원의 주사치료실에 견학을 다녀온 한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가장 독성이 강하고 위험한 치료 중 하나인 조혈모세포이식도 일부는 외래에서 한다고 해서 정말 놀랐습니다. 이식 직후 퇴원해서 외래에서 혈액검사를 하고 주사실에서 약물투여를 받으며 통원치료를 한다는 것이죠. 사실 골수억제가 아주 심한 동종이식은 무균실에 있어야 하지만, 자가이식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으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항암제를 맞을 때 아직도 입원을 선호합니다. 일단은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인데, 단지 그것때문에 입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심과 구토는 위에서 말했듯이 외래치료를 받을 때 오히려 덜합니다. 설사나 발열, 폐렴같은 부작용은 항암제를 맞을 때보다는 수일 후 생기는 경우가 더 많고, 언제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입원을 해야 조절할 수 있는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는 약제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전체 환자의 10% 정도입니다.
한편, 많은 이들은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입원을 선호합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모든 가족들이 환자에게 집중하지만, 점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가족들이 생계 또는 학업을 꾸리느라 바쁜 가운데 환자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가족구성원을 돌보느라 휴직을 하는 일은 대부분의 직장에서 어려운 일이기에, 항암제가 들어있는 인퓨전 펌프를 달고 있는 환자를 홀로 집에 두는 것이 불안한 가족들은 어떻게든 입원을 시키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젠 돌볼 가족이 아예 없는 일인가구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간병 서비스를 집까지 부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붕괴된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병원은 돌봄 수요를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당연히 입원을 선호할수밖에 없게 됩니다.
한편 여성 환자는 인퓨전펌프로 항암제를 연결해서 집에 가면 집안청소, 빨래, 식사준비, 이런 것들을 다 해야 하는 탓에 입원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픈 몸으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경우도 많죠. 요즘은 남편들도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짧은 수준입니다. '집에 가면 일해야 한다, 쉴 수가 없다'라며 호소하시는 여성 환자의 말씀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부 환자들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실손보험 때문이죠. 입원을 며칠 이상 해야 실손보험에서 치료비가 나오니 입원시켜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건강보험적용이 되는 치료라면 그나마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외래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부담이 크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주사를 맞는 경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실손보험의 약관에서는 입원을 해야 고가의 약제비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주사여도 입원해서 맞으면 환자입장에서는 부담이 훨씬 덜해집니다. 반면 입원을 못하면, 어쩌면 환자의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되어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족한 병실을 외래에서 치료받고 돌아갈 수 있는 환자들에게도 나누어주자니 응급실에서 병실이 없어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정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환자가 '입원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려면, 외래에서 주사치료를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려면, 그는 반드시 입원을 해야 받을 수 있는 의료적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 바깥에서 환자가 필요한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의료인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그냥 다 입원를 시켜야 할까요?
그러나 입원은 결코 싼 것이 아닙니다. 메르스, 각종 병원의 화재, 신생아중환자실 감염 사고 등을 겪으면서 입원병실을 충분한 장비와 인력과 관리 체계 없이 운영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사회는 목격해 왔습니다. 인구 대비 입원병실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많지만, 적은 인원이 많은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서 입원진료의 질이 담보될 리 없습니다. 사회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돌봄까지도 입원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온 것이니까요. 이젠 그것이 분리되어야 하는데, 병원 바깥의 돌봄이 너무 취약하다보니 의료인들은 늘 딜레마에 빠집니다. 입원시킬 수도 없고, 안 시킬 수도 없는.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때문에 사회가 자신에게 술을 권한다고 한탄합니다. 장시간의 노동, 그로 인해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가족들, 여성에 대한 억압, 취약한 복지로 인한 높은 사보험 가입율, 이런 한국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들이 결국 환자들에게 입원을 권한다고 한다면, 너무 과대한 해석일까요?
이 글은 2015년 청년의사에 기고하였던 글을 최근 상황에 맞게 수정한 글입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