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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07. 2019

‘좋은 거짓말’은 좋은 것인가

얼마 전 여러 다양한 진료과 선생님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항암화학치료를 하는 다른  과 선생님 (종양내과 말고도 항암제 치료를 하는 과는 여럿 있고 병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이었는데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죠.

“종양내과 선생님들은 환자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죠?”

“네?”

“저희는 진실이 항상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환자들은 끝까지 자신이 좋아진다고 믿고 싶어하거든요. 우린 환자들에게 나빠진다는 얘길 하지 않아요. 끝까지 좋아질 거라고 믿고 항암치료를 하는 거죠.”

그 당시에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너무 기가 막히기도 했고, 저보다 시니어인 선생님이기도 해서 함부로 반박할 수 없었던 저의 비겁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그런 관점도 있을 순 있겠구나 마음 한 구석에선 수긍을 하는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난소암 경험자인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가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무조건 좋아진다는 얘기만 듣고 싶었어요. 나빠질거라는 생각은 떠올리고싶지조차 않았어요.”

수신지 작가는 그의 투병기를 그린 ‘3g’에서 아마도 짐작컨데 완치 목적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잘 이겨내어 지금 우리에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완치가 불가능한 상태의 진행암을 진단받은 경우, 재발한 경우,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환자들에게도 우리는 무조건 좋아질 거라고, 희망을 잃지 말자고, 나빠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소위 “좋은 거짓말”로 용인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환자의 자율성(autonomy)입니다. 진실을 아는 것은 그의 삶이 그의 것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진실을 알립니다. 물론 병이 악화되고 있다는 진실을 알리는 것이 환자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선생님은 환자에게 좋아지고 있다고 거짓된 위안이라도 주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가족들이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절망때문에 의지를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더 큰 마음의 고통을 주어 환자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짐작일 뿐입니다. 실제 병이 악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 많은 환자들은 당연히 절망하지만, 생각보단 의연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삽니다. 늘 두려워 하던 상황이 실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안도하는 모습이 설핏 비치는 것을 느꼈다면 과장일까요. 올 것이 왔으니 적어도 불확실함에 두려워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안도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고 그것을 우리는 찾아낼 수 있습니다. 완치가 어려운 진행암 진단을 받았어도, 병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것으로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더 쓸 수 있는 약이 없다고 해도, 내일 보고싶던 가족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는 작은 희망은 가질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동안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동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버킷리스트를 실행한다는 건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근거림과 작은 기쁨이 자리할 구석도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저는 제 자신이 막연한 희망 속에 누구도 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항암치료만 하다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기에 제 환자들에게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환자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힘든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그것이 환자들을 위해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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