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Aug 28. 2018

진로교육에 대한 삐딱한 생각  

요즘 학교에서는 진로에 대한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틈만 나면 앞으로의 꿈에 대해 써와라, 진로에 대해 탐색하는 숙제를 해와라, 그런게 많은데 이번 여름방학엔 <진로체험학습보고서>를 해야 하는게 있다는 것을 오늘이 개학인데 그저께 알게 되었다. 오마이갓! 

아들은 꿈이 의사인데 진로체험학습이라니 뭘 해야 하지. 출근할 때 데려와서 회진을 보게 시킬까, 인턴선생님들 교육할 때 참관하게 할까 하다가 관뒀다. 한참 바쁜 병동진료에 초딩을 데려오는 것 자체가 직원 및 환자들에게도 민폐이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8월 초에 과학관 체험학습을 한 걸 가지고 쓰라고 하고 출근했더니 아이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건다. 

"엄마 그때 체험학습 했던건 의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어요."

"야 의학도 과학이야 다 비슷해~~"

"이게 진로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

그래 뭐 딱히 관계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런데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꼭 그 쪽으로만 알아봐야 할까? 또 꿈이 바뀔 수도 있을텐데. (아마 의대의 경쟁률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어릴 때는 여러가지 영역을 탐색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그 영역에는 직업의 세계도 있겠지만, 뭘 하고 살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진로체험학습보고서 뒷장에는 가족이나 이웃과 인터뷰를 해서 써야 한다. 그들이 가진 직업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이다. 천편일률의 흔한 질문들이었다. 빨리 해서 개학날 내야 하니까 결국 퇴근후 아들과 속성 인터뷰를 진행했다. 


- 왜 당신의 직업을 선택하셨나요? 음...엄마는.... 그냥 성적이 남아서(....!) - 그런데 놀랍게도 사실임.(돌 날아온다...) 조금 홧김에 원서 넣었음. 고3때 담임이  자기 딸이 의대다닌다고 우리반 아이들을 얼마나 무시하던지. 그런데 그 담임이 또 나에겐 충분히 된다고 써보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조금 위태위태하긴 했는데. 결국 내가 합격해서 인사고과에 이득이 좀 되었겠지. 씁쓸한 일이지만. 어쨌든 의사가 되어 생명을 구한다 이런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 그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음.... 공부를 열심히 했지 그 외엔 별로.... 그냥 꼭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보단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지. 


- 당신과 같은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의학에 대한건 의대와서 많이 배우니까 그전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의대 온 이후로는 공부와 수련으로 이어지는 정말 좁은 세계에서 10여년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다가 사회에 나가면 정말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 되기 쉽거든.의사가 되고 싶다고 너무 의학과 관련된 콘텐츠만 접하려는 건 너무 편식이 아닐지 싶네. 


 어렸을 때부터 간절히 의사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의사가 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원서쓰기 직전에 결정한 경우다. 얼떨결에 의대를 갔고 얼떨결에 내과의사가 되었고 또한 얼떨결에 종양내과의사가 되었는데, 그러나 처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보다 소명의식이 적거나 이 일을 덜 사랑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직접 하면서 그 결을 알게 되며 사랑하게 되었다. 내과의사의 신중하고 꼼꼼한 진찰과 추리와 그것이 담긴 차트를 사랑한다. 신약개발과정에서 생물학적 정합성과 놀라운 효과를 보이는 약제의 깔끔하고 우아한 그래프, 그 뒤에 숨은 수많은 실패와 눈물과 노가다를 사랑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따뜻한 손길과 마지막의 화해가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보지 않지 않았다먼 알기 어려웠을, 그 직업 세계의 '얼'과 '결'들을 흔한 보람이나 소명의식같은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왠지 껄끄럽다. 그것들이 진로교육에서의 '탐색' '학습' '견학'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일까...... 

이제사 찾아보니 진로체험학습은 교육부에서 권장하고 각종 사업장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 몰랐는데 진로교육법이라는 법도 따로 있다!  2016년부터는 진로체험 인증기관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진로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장에 일정혜택 (그래봐야 인증마크 부여하고 학교에 홍보)을 제공하고 있다. '나의' 진로와 연관된 무엇을 해서 스펙으로 만들고 그걸 입시 포트폴리오에 활용한다는  압박감이 없다면, 여러가지 직업의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자체는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교수님의 중학생 자녀는 병원 회진에 참여해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그것을 잘 편집해서 교내 진로탐색경진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데 나도 그렇게 해야 할까. 그건 기회의 불균등을 이용한 것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 진로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 교육적 효과는 어떻게 측정하며 어느 정도인지, 어떤 방법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냥 사회를 거대한 키자니아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아직까지는 그 시간에 책을 더 읽는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http://www.ggoomgil.go.kr 교육부가 운영하는 진로체험학습 지원 웹페이지   



작가의 이전글 가난한 노래의 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