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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 김명남 역/ 창비

by OncoAzim

예전엔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종종 썼는데 요즘은 뜸해졌어요. 가끔 ‘수 년전 오늘’로 뜨는 글들을 보다 보면 내가 이런 글도 썼구나 싶기도 하고, 옛날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지요. 아래 글은 3년전에 쓴 것인데, 지금은 이 아이들이 그 때의 아이들이 아니죠. 아들은 터닝메카드는 이미 졸업한 지 오래되었고, 엑소에 이어 BTS, 요즘은 역주행하여 퀸의 음악에 열광하고 있습니더. 딸은 오빠가 물려준 옷은 더 이상 입지 않습니다. 소꿉장은 구석에 처박혔고, 슬라임과 휴대폰게임을 더 좋아하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의 여자아이의 삶이란 계속해서 어떤 종류의 질곡이던 맞닥뜨리기 마련이니, 저에겐 이 글도 역시 되새겨보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최근 불과 3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천상 여자다’ ‘여자답다’는 말은 글을 쓸 당시엔 아무렇지도 않은 말들이었습니다. 이젠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해도 되는 상황일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직 이 책을 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페미니즘이란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가 있기도 하고, 사실 자신이 관심있는 책만 읽기도 벅찬 상황이니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금방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고, 집에 어딘가 있을테니 주말엔 다시 권해봐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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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터울인 오빠랑 매일 다투고 소리지르곤 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딸에게는 오빠가 롤모델입니다. 오빠가 좋아하는 터닝메카드와 카봇을 좋아하고,옷도 오빠가 즐겨입다가 물려준 우중충한 색깔의 티셔츠와 청바지를 더 좋아합니다. 딸을 낳은 후 분홍색 샬랄라 옷과 레이스가 가득한 발레 스커트, 타이즈를 입히면서 느꼈던 희열은 이제 더 이상 맛볼 수 없지요. 사와봐야 안입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돈도 좀 굳었지만….
그러는 딸에게 한 가지 여성스러운 취미가 있다면 소꿉장난입니다. 장난감 가스렌지를 켜고, 계란후라이를 하고, 샐러드를 만들고 커피를 내려서 갖다주면 아빠는 ‘천상 여자다’라고 좋아하지요. 딸 가진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아 가만히 있지만 그 말은 나에겐 왠지 좀 불편합니다. 여자다운 품성을 지닌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런지 모르겠지만, 부모에게 커피를 내려주는 (실제로는 빈 잔이긴 하지만) 사려깊고 다정함에 대해 칭찬을 할 순 있어도 그것이 여자답다고 칭찬을 하는 것은, 글쎄요.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 여자의 일’이라는 관념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별 관심을 보이지는 않네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역시 이 책에 나와있듯이 좋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자를 싫어하고, 남자보다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싫어하고, 유머감각이 없는’ 그런 여자를 일컫는 느낌이 듭니다. 딸이 그런 여자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며, 아내가 그런 여자가 아니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의하는 페미니스트는 그런 편견에 찬 스테레오타입은 아닙니다. 저자는 여성이어서 겪게 되는, 많은 이들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충분히 부당하게 반복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바꾸는 것을 우리의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립스틱과 하이힐과 꽃무늬 스카프가 주는 행복과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강요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기 때문에 “여성스러울 “ 줄 아는 사람이지요. 우리 딸도 그렇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다워야 하기 때문에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카봇과 터닝메카드도 좋아하지만 소꿉놀이도 좋아하니까 하는 것처럼요.
아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는 딸이 충분한 성적이 되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일은 없을것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반장이 될 자격을 얻지 못할 일은 없겠지요.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커피를 내리는 일을 전담해야 할 일은 글쎄, 아직 일부는 있겠지만 딸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그리 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70년대에 태어나40년을 살아온 나도 당해보지 않은 일이니까요.
하지만….예쁘지않거나, 살집이 좀 있거나, 활달하다는 이유로 “너도 여자냐” “좀 여자답게 하고 다녀라”는 말을 들을 가능성은 꽤 될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이유식을 만드는 것,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부부가 둘 다 일을 하고 있더라도 당연하게 우선적으로 참석해야 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과 일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일을 위해 가정을 희생시켜선 안된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지배하면서 괴로워할 가능성이 분명 오빠보다는 더 높을 것입니다.다 내가 겪어왔고 겪고 있는 일이니까요. 우리의 문화가 지금과 달라지지 않는다면요.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엑소 형들처럼 멋진 남자가 되고싶어하지만, 잘 울고 마음이 여린 아들에겐 강하고 활달한 남자가 되어야한다는 사회문화적 압박이 힘겨울 것입니다.
아들과 딸이 다 잘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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