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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l 19. 2016

환자의 자리에서

얼마전 갑상선항진증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었다. 2년간 약을 먹은 후 끊어보았는데 다시 재발해서 안되겠다 싶었다. 그동안은 내분비내과 전문의인 친구에게 문자로 상담하고 약처방은 내가 해서 먹었다. "이번에  T4는 얼마, TSH는 얼마야. 이젠 몇알먹어?" 문자를 보내면 얼마 먹으라고 답을 해주고 내가 나에게 약을 처방하고 약국에 사러가고.... 그러다보니 순응도(compliance, 약을 스케쥴을 지켜서 꼬박꼬박 복용하였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가 매우 낮았다. 혈액검사도 내가 생각날때마다 하니 간격이 들쭉날쭉. 아 이래선 안되겠다. 의사도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지 셀프진료로는 평생 관리가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직장을 옮겨서는 내분비내과 진료를 정식으로 받기로 결심했다. 같은 직장, 같은 내과이지만 병원이 워낙 커서 잘 모르는 시니어 교수님께 진료를 받게 되었다. 최근 체중이 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항갑상선제인 메티마졸을 3알로 늘렸고, 그 결과를 보러 다시 외래를 방문했다. 사실 결과는 전자차트를 통해 미리 봐서 알고 있었다. (하긴 요즘은 병원 앱으로 일반 환자들도 다 볼 수 있다) 

 "지금 (메티마졸) 3알 드시죠?" 

"아 네 3알 드십...아니 3알 먹고 있어요." 

상대방이 나에게쓰는 경어체를 그대로 반복하는 말실수를 나도 저질렀다. 환자들이 흔히 하는 말실수다. 의사도 의사 앞에 서면 버벅대고 긴장한다. 물론 시니어 교수님이어서 그러긴 했겠지만, 의사의 자리와 환자의 자리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가운입고 앉아도 환자의 자리에 있을 때의 긴장감은 마찬가지다. 
진료는 "그럼 이제부턴 1알드세요"로 1분도 안되어 끝났다. 나는 교수님이 3일전부터 의무기록을 검토하고 혈액검사와 갑상선스캔결과를 확인하였으며 약 용량을 어떻게 조절할지 계획을 미리 세워놓았음을 알고 있었다. 나도 그러고 있기 때문에 원망을 할 수가 없다. 나도 외래 하루 전날 예약된 환자들의 기록을 검토하고, "괜찮아요" 또는 "약 바꿔야되겠어요" "수술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한마디를 하기 위해 영상과 검사결과를 리뷰하고, 필요하다면 환자의 질병의 경과 전체를 복기하며, 타과의사에게 연락하여 물어보고, 문헌을 찾아본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인지되는 것은 자신과 대면하는 아주 짧은 1-2분 뿐이다. 그것도 긴장해서 대답도 잘 못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잘 얘기를 못하니 문 닫고 진료실을 나오면 아쉽고 불만이 많을수밖에 없다. 

당장 진료시간을 많이 늘릴 수는 없다. 앞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만, 그러려면 1인당 진료비를 크게 늘려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다. 환자들로서는 짧은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최선이다. 우선은 궁금한 것을 적어보고, 순서를 매겨보고, 가장 나에게 중요한 것, 불편한 것부터 말해보자. 군더더기는 빼고. 통증을 표현할 때 얼마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먼저 말해야지,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물어보면 글쎄 내가 어디에 뭘 하러 갔는데 그때부터 여기가 이상하게 느껴지다가 좀 괜찮겠거니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쑥쑥거리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 물론 그렇게 서사적으로 표현하면 전반적인 그림은 그려지지만  한번에 딱 정리가 안된다. 일단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요약해서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늘 적으면서 정리를 하면  (실제로 그러는 환자분들이 있다. 젊은 분들이 주로 그렇게 한다. 연세 많은 분들은 아무래도 한계가...) 주어진 시간에 비해 의료진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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