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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n 21. 2016

[독서록] 지금 꼭 안아줄 것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요즘 출퇴근길에 종종 듣는 서천석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아이와 나’라는 팟캐스트에서였다. 아내를 잃고 기자라는 직업을 접은 채 육아에  전념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아이와 함께 슬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훈훈했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래도 직업적 관심이 가게 되었다. 도대체 왜 엄마는 사랑하는 아이를 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야 했을까. 팟캐스트에서는 사인이 의료사고이고 병원 측의 과실로 얘기를 해서, 사실은 좀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첨엔 책을 시간상 다 읽을 수가 없어서 치료과정과 사망 이후의 의료분쟁에 대해 먼저 읽었다. 지금은 소화기암만 주로 보는지라 혈액질환 환자들을 본 지는 오래되었고, 사실 최신지견은 거의 모르지만, 그래도 타과 의사들이나 일반인에 비한다면 나에게 중증재생불량성빈혈은 비교적 익숙한 병이다. 아직까지 유일한 치료방법은 동종조혈모세포이식. 심각한 병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백혈병 등 악성질환에 비해서는 이식의 성적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알리지 않았던 것일까? 방송사 기자였던 글쓴이는 아내와 이별할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음에 너무나 마음아파하고, 그것은 이식과정에서의 사망의 가능성에 대해 의료진으로부터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건 조혈모세포이식과정에 참여해본 의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는 하다. 조혈모세포이식은 병원에서 하는 치료 중 가장 사망률이 높고 위험이 큰 치료 중 하나다. 게다가 글쓴이의 아내는 제대혈 이식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성인에게 제대혈이식을 하는 것은 조혈모세포 수가 적어 대개 일반적인 이식보다 생착이 잘 안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알고 있다. 더 위험이 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전에 비해 이식의 성적이 좋아졌다고 해도, 의료진이 사망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안했을 리는 없다. 이식 전에는  대개 담당 교수가 동의서를 직접 받고, 이식코디네이터 간호사가 약 1시간 정도 이상의 가족면담을 하며, 대개는 녹취를 한다. 사망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이식 전 상담과정에 제대로 참여를 하지 못했거나,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가 다른 이들의 말과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아마도 전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사망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들었지만, 그것을 가능성으로만 들었을 수도 있다. 즉 당장 다가오는 현실로서 설명을 듣지는 못한 상황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다.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이를 가족들에게 효과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환자를 포기하는 것 같고, 스스로가 무력하고 비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도 종종 DNR을 결정하며  ‘내가 너무 질병 앞에 비겁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니까. 남편이 ‘아내가 죽을 수도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던 중환자실 의사 (아마도 전공의인듯)가 “살려야죠, 죽을 병이 아니니까요’라고 대답한 것은 ‘살수 있다’라기보다는 ‘죽을 가능성이 높지만 임종순간까지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계속 적극적인 치료를 하겠다’는 선언에 더 가깝다. 그보다는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너무 위중해서 돌아가실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상황이 오지 않기를 물론 바라지만, 정말 안좋은 상황에 대비하여 가족분들이 환자와 작별인사를 미리 해두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충분히 위험에 대해 알리지 못했고 이별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누구의 탓이던 간에 결국은 의사소통의 실패다.

 치밀한 남편은 이식 전 수차례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한 아내에게 원인불명의 흉수가 있었고, 그것이 실제로는 진단되지 않은 결핵성 흉수였으며 추후 사인이 된 결핵의 진행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무기록 검토를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이식 전 흉수검사에서 ADA 검사가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시약이 동이 나면서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까지 밝혀낸다.  이식 전 충분한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아마 Tb PCR까지 모두 나갔고 ADA만 빠진 것 같다) 호흡기내과에 협진을 구하지 않았다는 (그러나 감염내과에는 협진을 했었다) 이유로 조정금액은 8천만원으로 정해졌고, 남편은 병원의 행정책임자에게서 직접 사과받기를 원하였으나 결국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대한 허탈함과 분노를 책에 그리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이 고통스럽다. 글쓴이가 드러내는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분노가 불편하다. 의료분쟁은 신해철 케이스와 같이 누가 봐도 의료진의 과실이 명확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병원측에 명확한 과실이 있다기보다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가까운 경우가 있다. 이때 좀더 세심했더라면, 더 잘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돌이켜 보아도 더 잘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환자 또는 가족은 비극적인 결과를 병원측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그것 또한 인간의 감정이 가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방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결국 이것을 과실로 만들었다. 실수 또는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니라, 더 잘하지 못한 것을 죄로 만들었다. 의사로서의 나는 이런 사람들이 무섭다. 

그러나 엄마를 잃은 아이가 슬픔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엄마로서 읽기가 참 마음이 아프다. 너무나 슬프지만 그것이 슬픔인 줄도 몰라서 표현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이라니.... 아빠 자신도 고통스럽지만 보듬어가면서 함께 누리는 일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 역시 마음이 아리게 만든다. 남편은 아내와 만나 함께한 순간은 물론, 질병으로 인한 비극 또한 생생하게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다. 아내의 부재로 인해 알게 된 일상의 소중함은 뒤따라오는 후회와 더불어 더욱 가슴이 저미는 아픔으로 느껴진다. 엄마이면서 아내로서의 나에게, 슬픔을 표현하고 나누면서 성장해가는 이 가족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애틋하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내가 손대고 있는 대상이 한 몸이 아니라 그의 영혼, 그에 얽혀있는 수많은 관계들과 마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 속에서 뭔가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더 잘하지 못한 것이, 더 세심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속에 오는 죄책감과 괴로움을 외면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의사들의 슬픈 숙명인 것이다. 


15년간 그냥 팔자려니 생각하고 해 왔던 이 일이 갑자기 어렵게 느껴진다. 글쓴이가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닐텐데, 제목이 말하듯 지금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말기,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기를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꼭 안아줄 것’일텐데,  아무래도 의사로서 읽는 것은 그게 아니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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