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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01. 2016

[독서록] 만약은 없다

남궁인 선생님의 “만약은 없다”를 하루만에 후딱 읽어버렸다. 대부분 이미 페북을 통해 읽은 글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어지간히도 충실한 그의 숨은 팬이었던 모양이다. 다분히 소설적인 과장으로 장식되어 있으나 묘사된 응급실은 그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다. 나도 나름 서울의 험한 응급실 중 하나인 보라매에서 갈고 닦은 경험이 있건만 그가 수련했을 것으로 보이는 안산이나 구로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응급실로 밀려드는 온갖 중환들과 급환들과 어처구니없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사연들을 다 걸러내고 비교적 평범한 (?) 환자들만 내과의사에게 고이 넘겨주어왔던 것이다. 목을 메거나 손을 긋거나 옥상에서 몸을 던진 사람들, 지하철에 뛰어들어 두 다리가 절단된 노인, 동거녀를 둔기로 살해한 남자, 등등은 이제껏 그들이 다 처리해왔던, 내가 잘 몰랐던 세계였다. 

사실 내과전공의의 눈에 비친 응급의학과의사란 “내과 선생님 환자왔어요”라며 triage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지 않은 환자들을 막 던져대는 원망스러운 이들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젠 최전선의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편으론, 그가 겪었던 일상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나에게도 환자 하나하나가 급박한 한편의 드라마같던 응급실의 엄청났던 하루들이 다시 머릿속에 펼쳐진다. 내과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어쩌다 하게 된 2001년 9월의 보라매응급실. 그 다이내믹함이 결국은 다른 과에 인사할 생각을 하지 못한 나를 내과로 이끌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응급실은 젊은 의료진의 혈기와 땀을 갈아 마시고 결국 소진에 빠지게 하는 용광로같은 곳이다. 이런 곳이 과연 사회에서 유지가 가능한가, 평생 이 일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싶은 생각은 늘 해왔다. 의사라기보다는 행정가같던 시니어 응급의학과 선생님들도 결국 그 소진의 산물이자 이곳이 굴러갈 수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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