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오후진료였다. "선생님 오늘은 조금 더 속도를 내주세요~화이팅!" 새해 휴일을 앞두고 진료가 너무 지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외래 간호사의 바램대로 할 수 있을까. 그날은 암 치료 후 6개월만의 검진에서 재발소견이 발견된 분이 세 명이었고 항암제의 효과가 좋지 않아 약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분이 두 명이었다. 이런 분들이 많을 수록 진료는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설명도 오래 걸리거니와 질문과 원망과 한탄을 받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마지막을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마무리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마음은 무겁다. 이분들을 왜 하필 오늘 오라고 했을까. 미리 알아서 일정을 바꿔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니, 다음주라면 더 괴로울지도 몰라. 새해를 '재발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하면 한 해가 전부 순식간에 어두워져 버릴 지도 모르니까. 오늘 들은 나쁜 소식과 함께 밀려온 절망은, 가는 해와 함께 떨쳐버리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빨리 떨쳐버릴 수 있을 수는.... 없겠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 않네요... 정밀 검사를 좀더 한 후에 치료방법에 대해 다시 상의드리겠습니다."
"... 제가 그동안 고기나 밀가루도 안가리고 막 먹고 그랬는데... 식생활 관리를 안해서 그럴까요?"
"암이 진행하는 것은 대부분 암 자체의 성질 때문입니다. 치료를 할 때 죽지 않은 일부 암세포가 숨어있다가 나중에 슬금슬금 기어나오는데, 그건 그놈이 독한 것이기 때문이지 환자분이 뭘 잘못 관리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자책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런 말이 충분한 위안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환자가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독한 놈을 충분히 억눌러 놓지 못한 의사의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는 계획대로 잘 되지 않을 경우 원인을 찾고 싶어한다. 의사들도 그렇다. 재발을 하는 환자에서 공통점을 찾고, 이런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더 강력한 치료를 하거나 새로운 약을 써서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공률은 조금씩 향상되어 왔어도 100%는 되지 못하고, 일부는 결국 나쁜 소식을 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즉 밝아오는 새해는, 아마도 좌절을 딛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새로운 목표로 함께 나아가는 나날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란 무엇일까. 환자들이 바라듯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은 대개 아니다. 가능한 한 오래 암의 진행을 막는 것, 통증을 줄이는 것, 숨이 덜 차는 것, 대소변을 좀더 잘 보는 것 따위의, 그들의 진짜 소망과 비교하면 하잘 것 없을 지도 모르는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들은 2,3주에 한번씩 추위를 뚫고 붐비는 병원을 찾아 공장과도 같은 시스템에 실려 주사를 맞고 간다.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도 그런 주사를 수십 건을 처방했고, 마지막 외래 진료는 다행히 제 시간에 막을 내렸다.
진료실을 나와 걸어가며 오늘 만난 이들을 떠올려본다. 항암치료 후 다행히 통증이 좋아져서 진통제를 줄일 수 있었던 분. 항암치료를 받는 상태를 숨긴 채 직장에 다니느라 고군분투하시는 분. 항암제로 줄여 놓은 암이 조금씩 진행하고 있지만 치료를 쉬면서 누리는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다며, 다음달로 약속을 다시 잡은 분. 그분들에게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맞는 새해란 어떤 것일까. 그 마음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분들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맞이할 지, 예전에는 왜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
남들에게는 비슷비슷한 한 해였겠지만, 당신이 오늘까지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걸 감히 내가 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까지 살아낸 것,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은 오롯이 당신의 승리이며,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모두 새해에는 평안하고 무탈하시길, 내가 그것을 도와드릴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새해 희망을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