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의심전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Feb 19. 2020

2020년 2월, 응급실에서

2월 서울신문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수정 전 원문을 올려둡니다. 코로나19는 사실 이제까지는 정부와 의료계의 기민하고 적극적인 대처 덕분에 상당히 잘 막아왔지만, 그러나 현재의 의료체계 속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전히 응급실은 너무 환자가 많고, 외래에서 해결되었어야 할 환자들까지 보고 있고, 외래에도 환자가 너무 많고 진료시간은 턱없이 짧으며, 환자와 의료진들은 모두 너무 지쳐있습니다. 이 가운데 코로나19를 이 정도라고 막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 상황은 지속가능할까요?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219031018&cp=seoul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접속하니 응급실에 내원한 익숙한 이름이 뜬다. 아. 또 오셨구나. 수 년 동안 치료해오면서 대부분의 항암제에 내성이 생겼고, 몸이 쇠약하여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기 어려워 말기암 진단을 내렸던 분이다.  통증 때문에 응급실에 또 내원한 것이다. 한달 사이에만 세 번째 방문. 

응급실에서는 혈압, 맥박, 호흡같은 ‘바이탈 사인‘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대개 비응급환자로 분류된다. 아마도 환자는 진통제를 투여받고 집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이 상황에서는 뭔가 다른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 분이 가능하면 응급실에 다시 오지 않도록, 아니 오지 않아도 되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이 시국에’ 나와 같은 종양내과 전문의들이 해야 할 일은 암환자들이 응급실에 와야 할 상황을 최대한 줄여주는 일이다. 

겨울에 기침, 가래, 발열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너무나 많다. 선별진료실을 운영하고, 여행력을 어느 때보다 철저히 조사해서 격리하지만, 지역사회 전파의 위험이 매우 높아진 이 때 응급실은 메르스 때처럼 다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전파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메르스보다 치명률이 낮다는 전망들이 보고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대개 가벼운 증상을 겪은 후 호전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그들은 대부분 동반질환이 없는 비교적 젊은 연령층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면역기능이 약해진 말기암 환자에게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수 있다. 감염되면 본인의 사망위험도 높고, 병원에서 접촉하는 의료진을 통해 다른 환자에게 전파시킬 위험도 높다. 인플루엔자가 도는 겨울은 그렇지 않아도 응급실에서 병을 얻어 갈 확률이 높아지는 계절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또 하나의 위험, 잘 모르니 더 무서운 위험으로 추가되었다. 

모르핀 주사를 맞고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은 그에게 묻는다. 

“지난번 진료실에서 호스피스 설명 드렸었지요? 기억나시나요?” 

“아우 난 그런거 싫어요. 이대로 죽기만 기다리란 말이에요? 선생님이 책임지고 고쳐줘요. 뭐라도 해봐야지. 나 버리지 마요 선생님.” 

예상했던 대답. 많은 환자들이 항암치료가 더 이상 어렵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서 내쳐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힘들어도 어떻게든 큰 병원의 응급실을 전전하는 것이 그들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4기 진행암 환자에게 항암치료는 암의 진행을 억제하여 시간을 벌어주는 치료이다. 그러나 결국 암을 끝장내는 치료는 아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결국 내성이 생겨 병을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나, 이런 치료의 속성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헤메는 환자가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대신 많은 환자들은 자신 나름의 사고 방식으로 질병과 치료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언젠가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의 성을 마음에 쌓고, 그것을 힘든 치료과정을 견디어 낼 보루로 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성을 지금, 내가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밖에. 다만, 이전에 좀더 잘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나는 이전에 외래진료실에서 이분의 통증의 양상이 어떤지 확인하고 진통제를 미리 충분히 늘려 드려야 했다. 호스피스를 죽으러 가는 곳이라 생각하고 거부하는 마음을 다독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어떤 치료를 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했다. 대형병원의 최신식 의료시설과 기술에 환자가 거는 기대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도움이 되는 시기는 이미 많이 지났음을 이해시켜야 했다. 고통스러울 수 있는 연명치료보다는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완화치료에 의료진이 더욱 집중할 수 있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도록 안내했어야 했다. 그러나 외래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3분 안에 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는 환자가 견뎌내야 했던 극심한 통증, 그리고 세 번이나 응급실까지 이송되는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이 겪었을 공포와 불안, 매일 사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응급실 의료진의 부가적인 노동, 피로와 소진, 그것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위험까지. 뭔가, 정말 많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환자는 응급실에서 비로소 진통제 용량을 늘렸고, 더 아프면 진통제를 얼마나 늘려서 복용해야 하는지를 교육을 받았으며, 입원할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도록 안내를 받았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인사를 나누며 환자는 울먹인다. 그의 희망이 무너진 날. 그에게 평화로운 삶의 마무리가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뚫렸다'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