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3월 칼럼입니다. 수정 전 내용을 아카이빙목적으로 브런치에 올려둡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318031018&date=2020-03-18
'XX시가 뚫렸다' 'OO 병원이 뚫렸다' 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 지역 또는 의료기관에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였다는 말은 이런 표현을 통해 여러 갈래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마치 단단한 봉쇄의 성이 함락이라도 된 듯한 위기감과 공포. 이제 바이러스의 확산은 불보듯 뻔하다는 좌절감, 이렇게 될 때까지 방역 책임자는 뭘 하고 있었느냐는 실망감. '뚫렸다'는 표현은 이런 여러가지 감정을 단 세 음절의 단어로 전달한다.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는 아마도 완벽한 방역, 즉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거의 100% 가능하다는 이상향을 염두에 두고 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가정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 바이러스는 환자가 증상을 명확히 자각하지 못할 때부터 체내에서 대단히 빠르게 증식하여 비말로 전파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실 발열 발생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파되는 독감이나 메르스같은 경우에도 100% 완벽한 방역이란 있을 수 없음에도, 우리는 왜 ‘뚫렸다'는 표현을 굳이 쓰는 것일까.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방역에 대한 집착과 소망이 담긴 것이 아닐까.
물샐 틈 없는 완벽한 방역에 대한 환상은 약과 치료에서 모두 해방된 건강한 삶을 이상향으로 삼고 이를 추구하는 일종의 완벽주의와도 닮아 있다. 물론 병원에 다니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사들은 흔히 본다.
혈압이 높으니 혈압약으로 조절해보자고 하면 '한번 약을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니 싫다' 고 거부하는 이들, 암이 진행되어 통증이 있으니 마약성 진통제를 써보자고 하면 '한번 먹으면 끊을 수 없고 중독된다고 하니 싫고 어떻게든 견뎌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그렇다. 항암치료로 암이 잘 줄어들고 있다고 하면 '암은 언제 다 없어지느냐' '항암은 언제 끝낼 수 있느냐'를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질병으로부터 해방된 삶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약으로 병을 조절하며 사는 삶' 역시 삶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약에 의존하여 사는 삶'도 아니요, '질병에 삶의 주도권을 내준 삶'도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해 약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감염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쩌면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에서 '완화전략'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전파 특징으로 볼 때 어디서나 환자는 산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아마도 지금의 집중적인 집단 발병 상황을 벗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갈 길은 '코로나 19 종식'이라는 안심할 만한 목표는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감염 위험에서 해방된 사회'가 아닌, '감염 위험에 늘 준비하고 일정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는 데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사회'가 아닐까. 아마도 치료제와 백신개발, 공공의료기관 확대 등 여러가지 과제가 있을 것이다. 당장 매일 환자를 만나는 임상의사로서는 취약한 환자들이 모여있는 상황 자체를 줄이는 방향이 가장 절실하다. 외래와 응급실, 4-6인실이 기본인 입원병실, 요양병원이나 장애인 또는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에서의 환자 집중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지역사회 중심의 개별적 돌봄을 위한 조직과 인력을 만들어야 한다. 병이 나면 일단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 거점병원을 이용하는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병이 있어도 약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합병증의 위험을 감수하는 환자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다시 ‘뚫렸다’는 표현의 함의로 되돌아가 보자. ‘뚫림’은 있어선 안될 일이 아니라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에서 해야 할 조치에 대한 지침이 있는지, 그대로 대처하였으며 적절하였는지에 좀더 언론이 집중해서 보도했으면 좋겠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끙끙대기 보다는 병과 함께 살아나갈 의연한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삶이다. 병에 걸린 삶도 삶이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