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Mar 08. 2020

집에 갈 수 있을까

코로나19 유행으로 온 사회가 혼란과 두려움 속에 정체된 지 두 달 째로 접어들고 있다. 일반 회사원들처럼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는 의료인들은 집에서는 육아의 부담과, 직장에서는 감염의 위험과 싸워야 한다. 우리집만 해도 초등학생인 둘째는 멀리 사시는 시부모님께 보냈고, 학원에도 학교에도 보낼 수 없는 중학생인 첫째에게는 배달 앱으로 점심을 시켜준다. 낮에 집에서 혼자 게임과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와의 갈등은 일촉즉발이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골치아픈 문제들은 병원에서 맞닥뜨리는 위중함에 비할 바가 못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유발되는 폐렴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일반적인 상기도 감염이나 페렴과 구분이 어렵다. 그리고 암환자들은 이러한 호흡기 감염증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한 병원에서 일어난 집단감염사태는 어느 병원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의료진들은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분리하여 진료한다는 '국민안심병원'을 국가에서 지정하여 홍보하고 우리병원도 그 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분리진료가 소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완벽할 수는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종양내과 외래 진료실에서는 예정된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에게서 우연히 폐렴이 발견되는 것은 평소에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주 어느 날처럼. 항암제의 효과를 보기 위해 불과 1주전에 찍고 온 시티 소견은 괜찮은데, 환자는 진료실에서는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당일날 찍은 엑스레이는 양쪽 폐에 뿌연 연기같은 음영이 가득하다. 맙소사. 

"언제부터 숨차셨어요?"

"일주일 되었어요. 왜 이렇게 치료 할수록 더 나빠지죠?" 

지금 힘든 것은 암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폐렴이 생겨서라고, 지금 바로 폐렴 원인을 찾고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는 말에 70대 노인은 완강히 거부한다. 

"이제 항암치료도 지겹고, 더 이상 병원 신세지기 싫어요. 집으로 갈 거요."

이 분이 만약 COVID-19 환자라면? 지금 이 순간이 밀접접촉인데. 하지만 그 순간은 이 분을 설득해서 응급실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설득을 2m 떨어져서 할 순 없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간곡한 설득 끝에 노인을 응급실에 보낸 후 진료를 재개하면서 비로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만약 그분의 코로나19가 양성으로 나온다면, 나는 2주간 격리되어야 할텐데, 그동안 봐야 할 수백명의 외래 진료는 어떻게 하지? 아니 당장 오늘 진료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환자들, 그들을 접촉한 의료진들도 검사를 받아야 할텐데. 호흡기환자와 일반환자의 동선은 오늘의 상황처럼 언제든지 섞일 수 있다. 그분은 예정된 항암치료를 하러 온 암환자였지만 숨만 찰 뿐 기침도 열도 없었고, 진료실에 들어와서야 의료진에 의해서 폐렴 환자로 분류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정보에 근거해서 하루에 수백명을 진료하는 외래진료를 막을 수도 없는 일이요, 그럴 권한도 나에겐 없었다. 

진료를 마치고 연구실에 틀어박혀서는 응급실로 보낸 환자의 코로나19 PCR 검사결과를 조회했다. 6시간은 지나야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새로고침을 클릭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괜히 머리는 지끈거리고 목도 간지러운 것 같다. 첫째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어제 집의 와이파이를 차단해서 인터넷 사용시간을 제한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아이과 크게 싸웠는데, 내가 격리되어야 한다면 아이도 짐을 챙겨 시댁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면 2주동안은 얼굴을 못볼 지도 모르는 것이다. 왠지 머릿속이 아득해져왔다. 

마음 졸이며 기다린 노인의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물론 영상소견이 바이러스성 폐렴의 소견이라 아직 완전히 COVID-19를 배제할 수는 없어 몇 번 다시 검사를 해볼 예정이지만, 일단은 한시름 놓았다. 그와 함께 지금 이 순간에도 방호복을 입고 위험을 무릅쓰고 확진환자를 돌보는 최전방의 의료진들이 떠오르며 오늘의 내 작은 소동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래도 오늘 집에 갈 수 있는데, 그들은. 생업을 접고 대구로 달려간 이들과, 각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에크모를 돌리며 시시각각의 위험과 싸우는 이들은,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초췌한 얼굴로 TV에 잠깐 얼굴을 비추었던, 질본에서 근무하는 예방의학 전문의인 후배의 얼굴도 떠올랐다. 식사나 잠은 제대로 챙기고 있을 것인지.  

잠깐이었지만, COVID19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인에게 다가섰던 순간을 기억하며 나는 그들의 마음을 감히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의료인은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필요하면 일단은 필요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대단한 인류애나 희생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일하도록 배웠고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람들. 그들도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방호복을 벗을 때면 두렵고 불안할 것이다. 감염 전파를 우려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을 이들이 태반일 터이다. 그들은,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까. 

괴롭고 답답한 시기이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많은 위험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필요한 일을 담담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할 일은 매일 뉴스를 보며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탓하거나 경악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고통을 견디며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지침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그럴수록 최전방에 있는 이들이 집에 갈 수 있는 날이 조금씩 더 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To Become a Physici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