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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an 13. 2020

To Become a Physician

<내가 만난 名문장> 2020.1.13 동아일보 

오늘자 동아일보에 제 글이 실렸어요. <내가 만난  名문장>이라는 짧은 글 코너입니다. 

http://www.donga.com/news/List/Series_70040100000241/article/all/20200113/99192746/1


내용은 큰 차이는 없긴 합니다만 브런치에는 원문을 올려 놓을께요. 



의사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있는 가장  기회이자 책임그리고 의무이다. 

No greater opportunity, responsibility, or obligation can fall to the lot of a human being than to become a physician.


<해리슨의 내과학 원리중에서  


<해리슨의 내과학 원리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은 일명 <해리슨>이라고 불리며 전 세계의 의대생 및 의사들이 보는 내과학 교과서다. 심장, 호흡기, 소화기 등 각 세부 학문의 엑기스만 모아 놓았는데도 너무나 그 양이 방대하여, 아마도 이것을 다 읽고 의사가 된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엔 의대 교수님들은 다 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의대 교수가 되고 보니 아닐 것 같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해리슨 교과서는1950년에 출판된 초판 이후 현재는20번째 개정판이 나와 있는데, 첫 장인 “의사라는 직업 (the profession of medicine)”은 항상 초판에 실렸던 위의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여느 의사와 마찬가지로 의료인의 희생과 봉사를 기대하는 관점에 반감이 많다. 한국 의료의 부조리는 의료인의 직업윤리만이 문제가 아님에도 툭하면 히포크라테스 선서 운운하는 언론 기사도 질색이다. 의사는 신도 성직자도 아니요 생활인이다.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찌질한 감정을 느끼는 반면 인내와 체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개인의 역량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제도의 문제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이 모든 현실 앞에 지치고 닳은 냉소와 체념 한가운데에서도 저 문장을 다시 읽을 때면 느껴지는 벅참과 숙연함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기대어 온 많은 환자들의 눈빛들. 내 한 마디에 흔들리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한편 희망으로 부풀어오르기도 하는 마음들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이암 진단을 받고 절망에 빠져있는 환자에게 신약 임상시험을 해보자고 말하는 것. 가능성이 낮지만 완치를 바라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그를 위해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은 기회이다. 치료의 여정에서 환자의 몸에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파악하고 예측하고 대처하는 것은 책임이다. 희망의 나무를 심지만 그 중에 꽃을 피우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현실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그의 슬픔과 분노,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은 의무이다.  


사실 고백하건데 이 문장을 처음 접한 것은 학생 때가 아니라 의사가 된 이후였다. 학생 때 보는 해적판 다이제스트 번역본에서는 외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빠져있기 때문. 그 때 이 문장을 읽었다면 엄청난 초인만이 의사가 될 자격이 있구나 싶어, 안 그래도 엄청난 학습량에 더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의업이라는 것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친 일상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엄중한 기회와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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