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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y 07. 2020

그날의 수채화

O 선생님께. 


잘 계시나요? 문득 선생님이 생각나서 다니던 중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어요. 사립학교라 예전 선생님들이 아직 많이 계시더군요. 선생님도 아직 계시구요. 저희가 학교 다닐 때 막 새내기 교사생활을 시작하셨던 젊은 선생님들이 아직 계신 걸 보고 반갑기도 했었어요. 인기가 많으셨던  K 수학 선생님은 교감이 되셨고, 저희가 졸업할 즈음 새로 들어오셨던 H 음악 선생님은  그 무렵부터 학교 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20년 가까이 이끌어오고 계시네요. 미술을 담당하셨던 선생님께서 그리셨던 멋진 작품들을 보고 감탄했던 생각도 나요. 80년대의 끝자락에 다니기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은 지금 되돌아보면 많은 부조리와 야만이 넘치던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때를 떠올릴 때는 꿈같은 설렘과 다채로운 빛깔이 연상되기도 해요.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수채화처럼요. 

저는 선생님에 대해 좋은 기억이 더 많아요. 그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고 배운 것이 더 많아요. 미술학원도 다녀보지 않았던 제가 수채화를 연습하고, 사생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고, 졸업하기 전에는 방학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화를 그려볼 수 있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 역시 선생님이 주신 기회 덕분이었어요. 생각해보니 그 방학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되었던 시기였네요. 저에게 마음의 고통을 누일 곳을 마련해주셨던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요. 그림은 사춘기의 저에게 좋은 표현의 수단이 되어 주었던 것 같아요. 성취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었던, 중요한 치유의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런데 그 때의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든 이 때, 문득 선생님을 떠올린 이유가 있어요. 

초등1학년에게 속옷빨래를 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라고 한 초등교사에 대한 기사를 읽고서였어요. 물론 선생님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 상식밖의 행동을 할 사람도 아니고요. 선생님은 순하고 말수가 적은, 그리고 학생들에게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공평히 대하는 분이었어요. 반면 선생님보다 훨씬 이상하고 비도덕적인 교사는 차고 넘쳤지요. 최근 문제가 된 교사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을 하거나, 발로 차는 폭행을 하는 수준이하의 교사들을 기억해요 (다행히 그런 기억이 남아있는 선생님들은 이제 학교에 계시지 않더라고요). 소위 모범생이었던 저는 그런 대우를 받지는 않았고, 그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 소위 날라리 또는 열등생들을 동정하기는 했어도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어린 마음에서라도 그런 인식을 가졌던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저는, 선생님을 떠올렸어요.  

아마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인근 대학의 캠퍼스에서 열린 사생대회에 참가해서 어느 단과대학 건물을 그리고 있었어요. 봄이나 여름이었던 것 같고 날씨는 아주 좋았어요. 건물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나뭇잎들, 햇빛의 강약들을 물감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참가한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선생님은 캠퍼스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계셨죠. 선생님은 저에게 오셔서 어디를 짙은 색으로 칠해야 하는지, 어느 곳을 더 묽게 표현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저에게 몸을 기댔어요. 수채화 붓을 잡고 있는 제 손을 잡고요. 야외였지만 그늘진 벤치였고 건물의 한 구석자리여서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아 가르쳐주시느라고 그러시는구나 생각했지만 너무 오래 가깝게 기대고 있었어요. 저는 좀 혼란스러웠어요. 평소에도 좋아하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무섭거나 끔찍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게 단순히 가르쳐주시느라 그러시는 것인지, 아니면 저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러시는 것인지,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떨치곤 하면서 머릿속이 어지러웠어요. 

그리고 그 수채화로 상을 탔어요. 저는 제가 선생님과 일종의 비밀을 공유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어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인양 말이죠. 물론 그 이후엔 그런 일이 없었고 선생님이 저를 따로 부르신 적도 없었어요. 

그 이후엔 이 일을 잊고 지냈어요. 저는 크게 상처받지도 않았고, 힘들어하지도 않았어요. 단지 그때 잠시 혼란스러웠을 뿐이죠. 어쩌면 제가 뭔가 착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일을 지금 그 뉴스를 보고 떠올렸어요. 선생님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고발한 스쿨미투에 대한 보도가 한창일 때도 기억이 나지 않았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왜 그 일을 보고 선생님이 생각이 났는지 가만히 되짚어보았어요. 

흔히 학교에서 성희롱과 추행을 일삼는 교사는 느글거리고 역겨운 인간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사실 울산 초등교사도 그런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에 대해 보도되는 내용들을 보면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을 하던 교사였어요. 해맑은 아이들은 그를 좋아했을거에요.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선생님이라고요. 그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 선생님이 담당했을 아이들의 마음을 떠올려보았어요.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고 싶은 것. 선생님이 나를 좀더 아껴주었으면  바라는 것. 선생님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의 행동에 의문이 생겨도 억누르거나 저절로 신경쓰지 않게 되는 것. 그 마음이 제가 선생님께 가졌던 마음이었어요. 

지금은 알아요. 선생님이 조심하셨어야 했다는 걸.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수평이 아니기에, 권력을 가진 쪽에서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교사는 아니지만 의사가 되어보니 약자를 대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거든요. 물론 별 일 아닐지도 몰라요. 진짜 제가 너무 예민했는지도 모르고요. 지금까지도 저는 그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고 잊고 지냈어요. 아마도 대다수의 제 또래 여성들은 학창시절 이런 기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지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 초등학생인 제 딸이 만약 그런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니 그건 별 일이 아니었어요. 생각하기도 싫었어요. 

소위 '울산 팬티교사'라고 불리는 그분은 좋은 교사였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그가 성희롱을 저지른 것이 덮어지는 건 아니죠. 선생님도 좋은 분이셨고 지금도 좋은 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 기억이 없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 기억에 굳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땐 그런 말이 있지도 않았죠. 지금이라면 분명히...성추행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다만 이런 일이 그동안은 더 없었기를, 또는 앞으로는 더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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