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런 치료를 권유받았는데.. 해도 되나요?"
항암치료를 앞둔 환자가 머뭇거리며 꼬깃꼬깃 접어놓은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놓는다. 펼쳐보니 모 한방병원에서 준 안내지다. 1주 입원 프로그램 144만원. 양한방 협진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침과 뜸은 물론 고주파 온열치료, 면역력을 강화시킨다는 단백질 주사, 여기에 ‘면역주사'라는 이름으로 영양제, 비타민, 간기능개선제의 조합이 나열되어 있다. 대부분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이른바 <암환자 면역력 강화 프로그램>이다.
"환자분, 식사 잘 하시고 운동 꾸준히 하시는 것이 더 중요해요. 뻔한 얘기같지만 정말이에요."
"이건 그럼 할 필요 없나요?"
"글쎄요. 효과는 불분명할텐데 너무 비싸요. 저희 가족 같으면 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 가족에게는 안 권한다. 나라면 안하겠다. 이 정도의 표현이 들어가야 설득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건넨 말인데 환자는 그리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다. 왠지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하면 된다는 학교 선생님 말씀처럼 느껴졌을까. 사교육은 안하는게 바보인 것으로 여겨지는 나라에서, 비급여 '면역강화' 치료도 사실상 환자들에게는 필수아이템인 것일까?
내가 주로 치료하는 대장암의 경우 항암치료를 받느라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대략 한달에 5-15만원 선이다. 대부분 건강보험공단 급여대상이다. 암환자의 경우 본인 부담이 전체 비용의 5%임을 감안하면 실제 한달 치료 비용은 100~300만원 정도인 셈이다. 1주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그래도 100만원이 넘지 않는다. 효과가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 수만명에서 검증된 항암제의 가격이 정체모를 면역력 강화 프로그램보다 저렴하며, 그나마도 환자는 이중 5%만 내면 된다. 이렇듯 환자의 부담을 공보험으로 상당부분 감면해주어도 환자들은 다른 곳에 돈을 쓴다.
왜 그럴까? 남들이 몸에 좋다고 하는 것을 안하면 혹시 나중에라도 후회할까봐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은 비상식적인 소비의 큰 원동력이다. 사교육이 그렇고, 부동산이 그러한데, 자신의 목숨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는 안 그렇겠는가.
오래 전 90년대에 암으로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또한 그러했다. 각종 약초와 환약, 온갖 종류의 정체모를 약과 식품들, 암을 완치시켜준다는 수기와 비법이 담긴 책들이 집안에 굴러다녔다. 그는 대학원까지 나온 전문직이었음에도 근거 없는 민간요법을 믿고 기대었다. 그래도 당시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에는 민간요법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는 온갖 건강보조식품은 물론 일부 요양병원 및 한방병원이 뛰어든 큰 시장이 되었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면 암환자 면역력 강화를 내건 광고들이 늘 눈에 보인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일반 장사치가 아닌 국가가 발급한 의료인 면허를 가진 이들이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면역력’이란 무엇인가. 최근 키트루다, 옵디보 같은 면역관문차단제가 암 치료에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암 치료에서의 면역기능의 역할이 크게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암에 맞서는 면역기능을 측정하는 특정한 임상적 지표는 아직 없으며, 면역관문차단제에 잘 들을만한 종양표지자를 찾거나 특정 암 항원에 대한 면역반응을 강화시키는 백신이나 세포치료가 시도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 연구단계다. 우리 몸의 면역기능은 세균이나 암을 물리칠 수도 있지만 정상조직을 손상시킬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며, 여러 종류의 면역세포와 사이토카인은 물론 장내세균총까지 연관되는 대단히 복잡한 체계여서 ‘강화’와 ‘약화’라는 일차원적인 수준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면역력 강화’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를 어떻게 향상시키겠다는 말인가. 특정 면역기능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실제 항암효과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아마도 '면역력 강화'를 내세워 장사를 하는 이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준 면허를 '면역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영양제를 주는 데 사용해서는 안된다. 충분히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제를 일부 근거수준이 낮은 연구결과를 내세우며 터무니없는 고가에 팔면 안된다. 그나마도 수준 낮은 연구결과조차도 매우 드문 침, 뜸, 한약은 말할 것도 없다. 식약처는 수십년 전 지금처럼 신약심사가 체계적이지 않았던 시대에 부족한 임상데이터를 근거로 시장에 들어온 몇몇 약제들이 계속 고가에 팔리고 있는 상황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항암제의 허가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 즉 생존기간의 연장, 삶의 질 향상 같은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어느덧 ‘면역력’은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무적의 단어가 되어 버렸다. 최근 첩약 급여화 이슈로 의료계와 한의계가 대립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면역력’을 강화해준다는 비급여 시장에서는 양한방협진 면역암치료라는 이름으로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이 손씻고 마스크를 쓰는 기본적인 생활수칙인 것처럼, 암환자에게 투병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균형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과 같은 좋은 생활습관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상담이나 약물치료로 불안과 우울 등 감정적인 문제를 다스리는 것도 포함한다. 의사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이나 비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