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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내일 진료 안오셔도 될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담당의사의 전화를 받고 환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갑게 인사한다. 조직검사를 하고 퇴원한 분인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 당장 치료를 하지는 않고 향후 정기검진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병원에 오는 것은 위험한 일. 그래서 미리 전화를 드렸다. 물론 평소 같으면 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이 시점에서 한 명이라도 집 밖을 나오는 것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
심각한 대유행 상황이 가장 두려운 이들 중 하나가 암환자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의사들의 파업까지 겹쳤으니 이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암환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 가는 것도, 가지 않는 것도 둘 다 불안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항암 치료를 받는 분이라면 특히 걱정이 많이 되실 것이다. 항암치료는 대개 신체의 면역기능을 상당부분 약화시키기 때문에,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는 치료의 조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실제 진료실에서는 가능하다면 주사약을 먹는 약으로 바꾸어서 병원을 방문해야 할 일을 줄인다거나, 면역기능저하가 상대적으로 덜하도록 약의 종류를 바꾸거나 용량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효과가 불확실하거나 부작용이 큰 치료라면 과감히 생략하는 것도 고려한다. 말기에 가까운 상황에서의 항암치료가 그렇다. 치료로 인한 면역력저하와 병원 방문시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치료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 치료를 그대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백혈병, 림프종이나 소세포폐암같이 질병의 진행이 빠르고 순식간에 위중해질 수 있는 일부 암종은 치료 일정을 미루거나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다. 치료의 목표가 완치냐 완화냐에 따라서도 치료를 그대로 하는 경우도 있고 미루거나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갑상선암이나 전립선암과 같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자라는 암종의 경우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다면 치료를 미루는 것이 당장 시작하는 것보다 안전할 수도 있다.
수술의 경우에는 현재 우리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입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원 진료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전공의 파업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코로나19를 이미 호되게 겪은 유럽 및 미국에서는 일부 암종의 경우 수술 전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하면서 최대한 수술을 미루고 암의 진행을 막는 방향으로 권고안이 만들어진 바 있다.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는 대부분 외래진료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나마도 수술보다는 진료에 차질이 덜하므로, 고려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암 치료를 마치고 검진을 받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시기의 검진은 몇 주 또는 몇 달 미루기를 권고한다. 일부 혈액암을 제외하고는 수 주의 검진 연기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물론 심상치 않은 증상이 생겼는데도 집에서 참고 기다릴 필요는 없겠으나, 평상시와 몸 상태는 비슷한데 단지 제 때 검진을 받지 못해 불안한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지금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개인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다니는 병원에 문의해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재 대부분의 병원은 간호사나 의사가 전화 응대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막막할 뿐이다.
레지던트, 인턴 선생님이 모두 없는 병원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해야 할 처방을 일일이 다 챙기자니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러나 한편 하루에 한번 정도 회진을 하는 입원환자를 동의서를 받고 드레싱을 하느라 두세 번을 만나니 증상에 대해 더 세세하게 알게 되고 몰랐던 환자의 고민과 고통도 마주치게 된다. 암환자분들이 이 엄혹한 상황을 무사하게 지나가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지금 병원에 없는 젊은 의사들도 하루 빨리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며 미래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