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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n 27. 2020

청년 암환자를 위하여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708027018&cp=seoul&m_sub=msub_seoul_111&wlog_tag1=mb_seoul_from_index2

레지던트 4년차 때의 일이다. 고객의 소리에 들어온 불만사항에 대해 소명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환자는 20대의 여성으로, 담당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항암제 처방을 받으러 항암 낮병동에 갔는데, 거기서 만난 맹랑한 젊은 의사의 말에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항암치료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식으로 자꾸 말하는데, 왜 그거 하나에 목숨 걸고 있는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느냐는 것이다. 교수님이 치료하기로 결정했으면 처방이나 하면 되는 것이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나는 억울했다. 이미 많은 치료를 했고 꽤 쇠약해보이는데,  큰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치료에 매달리며 체력을 소진시키는 환자가 안타까웠고, 치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시작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 맞닥뜨린 이 절망적인 상황을 못 받아들이고 만만한 레지던트에게 투사(投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여겼다. 

20대의 나이에 암에 걸리다니. 많은 이들은 안타깝고 슬픈 운명이라 여길 것이고 드라마에 소설에 나오는 비련의 주인공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독히 불운한 누군가의 운명이라고 말하기엔 젊은 암환자는 생각보다 많고 보통 우리 주변에도 한두 명 이상 있다.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에 의하면 2017년 한해 발생한 15-39세 사이의 젊은 암환자는  16,800  명이었다. 한 해 발생한 암환자 23만여명 중 약 7%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 중 비교적 예후가 좋은 갑상선암이 가장 많지만, 유방암, 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림프종 등이 젊은 나이에서도 상당수 발생하며, 이 외에도 육종, 생식세포암, 뇌종양과 같은 이름도 생소한 희귀암의 비중이 중장년층에 비해 높다. 유방암이나 위암의 경우에는 진행속도가 빠르며 항암제에 잘 안듣는 난치성 암이 젊은 나이에서 더 흔하게 발생한다. 

청년 암환자들은 진료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거나, 정말 짧게 끝나거나,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증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문의하는 한편 인터넷에서 본 수많은 건강정보에 대해 상담하는 꼼꼼한 청년들은 질문이 질문을 낳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의사 입장에서는 진땀이 나고 일당 백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상당수는 후자에 해당한다. 필요한 것만 말하고, 처방을 받고, 휭 하니 진료실을 나간다. 어차피 의사에게 얘기해봐야 해결되는 것은 뻔하다는 학습된 좌절 때문일까. 아니면 병원에서 흘려보내는 젊은 날의 시간이 너무도 아깝기 때문일까. 단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순간은 빨리 나가는 그들이 고맙고 안도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서 뭔가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어딘가가 답답하다. '괜찮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인가. 괜찮기를 바라는 소망일까. 

남들은 학업을 이어나갈 때, 취업을 할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 한참 경력을 키워나가고 있을 때 암이라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힘든 치료 과정을 거쳐가는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회복이 된다 해도 치료의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고, 자녀를 낳는다 해도 암을 물려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독립해야 할 나이에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때로는 치료비용을 부탁하거나 간병까지 맡겨야 하는 상황도 원망스럽다. 이들을 위한 심리사회적 돌봄과 유전상담,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소아암 환자들은 상당수가 국가 또는 민간 복지 재단을 통해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노인 암 환자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움을 일부 받을 수 있다. 장년층은 그때까지 쌓아온 경제적 사회적 자산이 있지만 청년들은 그마저도 없다. 그들은 암 마저도 청춘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몸으로 때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청년기 암 환자들을 그들의 연령에 맞는 특수한 의학적, 사회심리적 돌봄이 필요한 환자군으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특화된 암 치료 프로그램을 만드는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 암환자에게 필요한 가임력 보존 (정자 보관 또는 난소 조직 동결 보관), 유전 상담 및 가족 스크리닝, 임상시험, 심리 상담 및 학업이나 취업 관련 상담과 관련된 인적 물적 자원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이다. 또래집단에서의 소통이 활발한 연령이므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자조 모임이나 청년기 암 환자들에게 특화된 정보와 도움을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역시 활성화되어 있다.  반면 입시, 취업, 노동만으로도 고달픈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암까지 걸리면 어떻게 살아갈 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뿔뿔이 떨어진 섬이 되어 각자 견디거나 소멸되어간다. 그래도 요즘은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병을 드러내고 투병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의사는 말기암환자의 민원에 '투사'라는 전문용어를 붙였지만,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환자를 기억하고 있고, 비슷한 또래의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를 떠올리고 있으니까. 그들이 말하지 않거나 못한 많은 고민과 고통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찾아내어 연결하고 함께 풀어가는 것이 나의, 그리고 이 사회의 과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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