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디엠 (당뇨) 하이퍼텐션 (고혈압) 있는 분이고 이번에 스토막 캔서 블리딩 (위암으로 인한 출혈)으로 오셨고요~”
간호사들이 다음 근무팀에게 인계하는 말들에 섞여서 ‘워낙에’라는 단어가 왠지 귀에 들어온다. ‘본디부터'라는 뜻의 ’워낙'이라는 부사에 조사 ‘에’가 붙은 말이다. 나는 사실 인턴 시절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사투리인 줄 알았는데, 다른 장소에 비해 병원에서 더 자주 쓰여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워낙에’ 다음에는 주로 위와 같이 순 우리말 부사에 어울리지 않는 영문 진단명들이 줄줄이 따라온다. 과거의 질병, 또는 지금 계속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해 말할 때 보통 앞에 붙는 말이다.
‘워낙에’가 붙는 이들은 주로 병원의 단골손님들인 만성질환자들이다.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는,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들, 언제던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인생의 꼬리표 같은 병들이 ‘워낙에’ 다음에 등장한다. 막힌 심장 혈관을 카테터로 뚫어도 한번 그런 일이 생겼다면 또 생길 위험이 높다. 망가진 간을 꺼내고 새 간을 이식한다고 해도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는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암은 다행히 큰 탈 없이 치료가 종료되어도 언제나 재발과 치료후유증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늘 ‘워낙에’를 붙여 부르며 곱씹게 되는 병이다.
병원에 가는 것이 어쩌다가 닥치는 불운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는 것, 때로는 병원이 집보다 더 익숙해지기도 하는 환자로서의 삶. 건강한 청장년에게 이런 삶을 상상해보라고 하면 대개는 ‘어유 그러느니 죽고 말지’ 라며 생각하기조차 꺼려한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완치’ 시켜준다는 비법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실제 병든 삶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워낙에'라는 말은 마치 만성질환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상징하는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언젠가부터 이 단어를 익숙하지만 낯선 말로 기억해두게 되었다.
실제 ‘워낙에’ 아픈 이들이 다른 이들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이 아니라 사회의 짐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증거는 일상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에 코로나 집단 감염이 일어난 요양병원에 대한 코호트 격리는 그 극단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거대한 바이러스 배지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사망자가 줄줄이 나올 때, 방역업무를 담당하는 고위공무원은 “아직은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선 병원의 중환자실, 응급실, 병동의 의료진 가운데에는 견딜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음에도, 어떤 지표에 근거하여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말은 혹시 ‘워낙에 아픈 이들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건강했던 이들이 죽는 건 막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 아니었을까? 지난해 많은 찬사를 받았던 K방역 역시 실제로는 건강인 중심의 정책이었고, ‘워낙에’ 아픈 이들을 위한 대책은 미흡했다. 자가격리대상자와 해외입국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지원에 놀라고 자부심도 느꼈었지만, 확진자 치료를 위한 병상 준비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코로나 진료에 대한 지원도 너무나 부족하고도 느렸다. 작년 3월 이후 모든 해외입국자에게 무료로 시행하던 코로나 검사가 환자들에게는 무료가 아니었다는 것이 그 한 단면이다. 지난해 9월까지는 입원 전 선별검사는 증상이나 역학적 연관성이 없으면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었다. 각 병원들은 원내 확산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입원 전 환자들에게 무료로 코로나 검사를 하거나, 본인부담금을 받고 검사를 하다가 환자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기도 했다. 요양병원에 대한 인력지원이 되기 시작한 것도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다 못한 요양병원의 의사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면서부터였다.
이제 다시 3차 유행이 잡혀가고 있고, 2월에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지금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도 서서히 해결되겠지만, 향후 방역대책에서는 코로나 유행의 가장 큰 피해자들 중 하나인 만성질환자들에 대한 고려가 좀더 우선 순위에 왔으면 한다. 요양병원같은 고위험 시설의 확진자 이송 계획을 좀더 촘촘히 세워야 하고, 확진자 병상확대로 도리어 치료기회를 잃을 수도 있게 되는 만성질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주치의 제도와 만성질환 관리 체계를 확립하여 취약한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개선하고 요양병원과 같은 사각지대를 가능한 한 줄여야 신종감염병이 다시 닥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워낙에’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누구나 병들고 약자가 되어 사회의 보호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 환자를 돌보는 것은 의료인과 병원만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